본보 기자 태국서 ‘모의 인질 체험기’

  • 입력 2008년 3월 24일 03시 00분


13일 태국 후아힌 인근 군부대에서 진행된 인질 납치 상황 모의훈련에서 납치범 역할을 맡은 태국 군인들이 한 여성 참가자에게 두건을 씌워 끌고 가고 있다. 후아힌=김미옥 기자
13일 태국 후아힌 인근 군부대에서 진행된 인질 납치 상황 모의훈련에서 납치범 역할을 맡은 태국 군인들이 한 여성 참가자에게 두건을 씌워 끌고 가고 있다. 후아힌=김미옥 기자
“납치범 허락없이 먼저 말하지 말라”

“이름! 국적! 직업! 여기 왜 왔나!”

“한국 기자다. 난민들의 생활을 취재하기 위해….” “입 닥쳐!”

누군가 뒷목을 누르고 심문인지 취조인지 알 수 없는 질문을 쏟아냈다. 머리에 씌워진 두건 때문에 아무것도 볼 수 없다. 숨과 땀이 뒤섞여 답답하다. 숨을 쉬기 어렵지만 두건을 벗을 수도 없다.

그때 들리는 총소리, 울음소리. ‘이렇게 죽는구나!’

13일 태국 후아힌 근교의 한 군부대.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과 한국언론재단이 마련한 ‘위험지역 취재보도 연수’ 과정 훈련이었다.

▽인질 상황에서 살아남기=13일 인질 납치 상황 모의훈련. 납치는 눈 깜짝할 사이에 이뤄졌다. 여권도 통행증도 무의미했다.

‘납치범’들은 차를 가로막은 뒤 총을 머리와 가슴에 들이댄 채 무조건 끌어내리고 얼굴에 두건을 씌운 뒤 흙바닥에 내팽개쳤다. 모든 소지품을 꺼내게 하고 신분을 확인한 뒤 아무 말도 못하게 했다.

인질이 되는 데 5분도 걸리지 않았다. 가상의 상황이었지만, 훈련을 마친 참가자들의 얼굴에서 웃음을 찾아볼 수 없었다.

납치범 대장 역을 맡았던 데이비드 맥니 강사는 “일단 인질이 되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납치범과 대화를 하려면 먼저 ‘말을 해도 되느냐’고 물어 허락을 얻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목숨을 구걸하거나 우는 모습,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이면 절대 안 되며, 당당한 모습으로 무고한 희생자라는 점을 강조해야 살아날 가능성이 커진다고 덧붙였다.

▽군중, 총격, 지뢰를 만났을 때=재난과 총격전 등에 대비한 훈련도 이어졌다. 화재 현장에서 좁은 비상구로 먼저 나가려다 넘어졌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12일 화재 현장 탈출 훈련을 맡은 짐 굿 강사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싼 뒤 옆으로 누워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을 보라”고 했다. 넘어진 사람과 눈이 마주치면 대부분이 지나치지 못하고 도움을 준다는 것.

그는 “손을 가슴보다 높게 들어 몸을 역삼각형 형태로 만든 상태로 위험에 대비하면 잘 쓰러지지 않고, 앞뒤에서 갑자기 밀려오는 충격도 완화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길을 걷는데 주변에서 갑자기 총격전이 벌어지면 무조건 엎드린 뒤 상황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숨을 곳을 찾아야 한다. 이동할 때는 반드시 기어야 하며, 움푹 팬 곳이나 건물 벽, 지하실 등으로 피하는 게 효과적이다. 건물 안에 있다면 유리창이나 문 주변에서 가능한 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몸을 옮겨야 한다.

지뢰를 발견하면 모두 들을 수 있는 큰 소리로 “정지!”라고 소리친 뒤 멈춰 서야 한다. 13일 훈련을 담당한 캠벨 강사는 “지뢰를 건드렸다면 도움을 요청한 뒤 부동자세로 몇 시간, 며칠도 서 있을 수 있다는 각오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도와줄 사람이 없다면 양발을 고정한 상태에서 지뢰를 등지고 돌아서서 최대한 신중하게 한 걸음씩 물러나야 한다고 덧붙였다.

후아힌=이상록 기자 myzodan@donga.com


▲ 영상취재 : 동아일보 사진부 김미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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