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지족 美10대 “부모와 대화 안돼”

  • 입력 2008년 3월 10일 02시 59분


러셀 햄턴 씨는 미국 월트디즈니사의 아동서적 출판부 사장이지만 정작 자신의 10대 자녀에 대해선 별로 아는 게 없었다. 지난해 말 로스앤젤레스에서 딸 케이티(14) 양과 딸의 친구 2명을 차에 태우고 가면서 햄턴 씨는 이 같은 사실을 절감했다.

“케이티가 뒷자리에서 친구들과 영화 주인공 얘기를 하더군요. 우리 회사에서 만든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의 주인공 올랜도 블룸이냐고 물었지요. 그러자 10대 특유의 한숨이 나오더니 케이티가 ‘아빠는 너무 뒤처졌어요’라고 말하는 거예요.”

머쓱해진 햄턴 씨는 아이들이 재잘거리는 소리를 멈추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어 백미러로 딸이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것을 본 그는 “친구들이 있는데 문자를 보내는 것은 무례한 일이다”라고 나무랐다. 딸의 대답은 놀라웠다.

“지금 우리끼리 문자를 주고받고 있거든요. 제가 말하는 걸 아빠가 듣는 게 싫어서요.”

햄턴 씨의 경험담은 이제 미국의 일반 가정에서 벌어지는 일상이 됐다고 뉴욕타임스가 9일자 인터넷판에서 보도했다. 옛날 10대들이 ‘감시자’ 없이 데이트하기 위해 자동차를 활용했듯 요즘 청소년들은 부모의 감시망에서 벗어나기 위해 인터넷과 휴대전화를 이용한다는 설명이다.

기술 발전과 소비 행태를 조사하는 매사추세츠 프래밍엄의 IDC연구소는 ‘5∼24세 젊은층의 휴대전화 이용률이 급증해 2010년에는 이들 중 81%가 휴대전화를 갖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같은 개인통신 활용의 확대는 1960년대 엄청난 세대 차를 낳았던 로큰롤이나 성(性)혁명에 비교된다.

미국 통신회사 AT&T는 세대 격차에 충격을 받은 부모들을 위해 엄지족들이 주고받는 문자 은어(隱語) 해독 지침서를 내놓았다. 이 지침서에 따르면 ‘POS’는 ‘부모님이 옆에 있어(Parent over shoulder)’라는 뜻이고 ‘PRW’는 ‘부모님이 보고 있어(Parents are watching)’ ‘KPC’는 ‘부모님 모르게 해야 돼(Keeping parents clueless)’의 줄임말이다.

문자세대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부모와 문자로는 소통하지만 통화는 꺼린다는 점이다. 오리건 주 포틀랜드에서 식당을 경영하는 존 펜스 씨도 “딸이 전화를 받지 않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문자 보내는 법을 배웠다”고 말했다.

이 신문은 “좋든 싫든 전화보다 문자를 선호하는 세대의 소통 방식을 부모들이 배우면 세대 간 대화를 늘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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