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도로, 작은차가 접수한다

  • 입력 2007년 12월 13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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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1

“자신을 돋보이도록 하기 위해 꼭 페라리가 필요한 건 아니다. 초소형차를 몰면 환경시대를 이끄는 ‘생각의 리더’ 이미지로 돋보일 수 있다.”(트레이시 스펜서·미국 보스턴 거주)

이달 초 미국 주요 도시에선 독일 다임러 자동차의 ‘스마트카 포투’ 시승회가 열렸다. 내년 초부터 미국에서 시판 예정인 포투는 길이 269cm, 무게 703kg에 불과한 2인승 승용차.

6기통, 8기통 승용차와 미니밴,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 우글대는 미국에서 포투는 마치 장난감처럼 보였다. ‘집만 나서면 바로 고속도로를 달리는 일이 태반인 미국에서 이런 소형차가 소비자에게 먹혀들까’ 하는 의문이 저절로 들었다.

그러나 11일 현재 미국 소비자들의 반응은 뜨겁다. 예약금(99달러)을 내고 주문한 사람이 3만 명을 훌쩍 넘어섰다. 다임러 측은 “지금 신청해도 내년 후반에나 차를 받을 수 있을 만큼 공급 용량을 초과하고 있다”고 밝혔다.

#장면 2

“정말 어려운 과제가 되겠지만 우리는 해내야 한다.”(빌 포드 포드자동차 대표·지난주 연설에서)

미국 하원은 지난주 자동차 연료소비효율 기준을 2020년까지 갤런당 평균 35마일(L당 14.8km)로 상향 조정하는 ‘에너지 독립 안보법’을 통과시켰다. 업체마다 자사 생산 차량의 평균 연비를 이 기준 이상으로 맞추어야 한다. 현재 연비 기준은 승용차가 갤런당 27.5마일, 경트럭(SUV, 미니밴 등 포함)은 22마일이다.

미국 언론들은 “새 기준은 기준치가 처음 마련된 1975년 이후 가장 큰 폭의 변화이며 지구환경 위기에 대한 미국 사회의 첫 실질적인 대응”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 법안은 자동차 업계의 반대로 수년간 논란의 대상이 되어 왔으나 결국 하원 지도부와 업계 대변 의원들이 며칠 동안 밤샘 협상 끝에 입안됐다.》

고유가와 환경 위기가 미국 도로의 모습을 조금씩 바꾸고 있다.

기름을 적게 먹는 하이브리드 차량 판매량은 2000년 9350대에서 지난해엔 25만 대로 늘었다. 홀대 받아 온 소형차 판매량도 꾸준히 늘고 있다. SUV의 시장점유율이 2003년 18.7%에서 2006년 14.1%로 줄어든 반면 소형차는 13.4%에서 15%로 늘었다

스마트카가 미국 시장에 도전하는 것 자체도 ‘사건’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차는 유럽 시장에서 1998년부터 판매돼 왔지만 미국에는 도저히 맞지 않을 것처럼 여겨졌다.

싼 맛에 사는 차는 아니다. 기본형이 1만1590달러(약 1074만 원)이며 고급형은 거의 2만 달러(약 1853만 원)에 이른다. 갤런(3.78L)당 시내 40마일(L당 16.9km), 고속도로 46마일(L당 19.5km)이란 높은 연비와 주차가 쉬울 것 같은 작은 체구가 인기의 요인으로 꼽힌다.

하이브리드 차량인 도요타의 프리우스는 올해 미국에서만 20만 대 가까이 팔릴 것으로 예상된다. 다른 업체들도 경쟁적으로 하이브리드 차량을 내놓고 있다.

새 법안은 연비를 높이기 위한 기술 개발 경쟁에 거대한 동력을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2020년 하이브리드 차량의 시장점유율이 20%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연비 기준 상향으로 인해 2020년 기준 하루 110만 배럴의 석유를 절약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현대차의 한 관계자는 “안전에 대한 관심이 특히 높은 미국 사회의 특성상 자동차시장이 소형차 위주로 재편될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연비를 높이는 첨단 기술을 놓고는 경쟁이 갈수록 뜨거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현대차의 승용차들은 현재도 평균 연비가 갤런당 30마일(L당 12.7km)을 넘지만 SUV 등을 합쳐 갤런당 35마일(L당 14.8km)이란 목표를 맞추려면 가야 할 길이 멀다”며 “연비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앞서 있는 한국과 일본 업체에도 거대한 도전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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