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걸 스토리’ 거짓말?

  • 입력 2007년 11월 7일 03시 10분


코멘트
■노벨의학상 카페키 교수 유년시절 행적 의문

어머니 체포된 1941년은 伊에 게슈타포 활동안해

2차대전 아버지 전사 주장도 참전기록 없어 의혹

드라마 같은 인생 역정으로 화제를 모았던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 공동 수상자 마리오 카페키 미국 유타대 교수의 유년시절 행적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고 AP통신이 6일 전했다.

카페키 교수가 그동안 밝혀 온 유년 시절은 다음과 같다.

1937년 이탈리아 베로나에서 태어난 그는 공군 조종사였던 아버지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전사한 뒤 1941년 어머니인 루시아 람베르그 씨마저 독일 비밀경찰(게슈타포)에 끌려가면서 어머니와도 생이별을 했다. 어머니는 그 뒤 독일 다하우 수용소에 수감됐다.

체포되기 전 람베르그 씨는 전 재산과 함께 아들을 시골에서 농사짓는 친구에게 맡겼지만 친구는 이 돈이 바닥나자 어린 카페키를 거리로 쫓아냈다. 이후 그는 4년 반 동안 부랑아 생활을 했다. 9세 때 나치가 패망하자 그는 수용소에서 나온 어머니를 만나 미국으로 건너갔다. 외삼촌의 도움으로 학업을 이어간 그는 결국 유명한 과학자가 됐다.

그러나 AP통신은 당시 기록을 조회해 본 결과 카페키 교수의 기억에 사실과 다른 점이 많다는 것을 발견했다.

먼저 람베르그 씨가 체포됐다는 1941년에는 게슈타포가 아직 이탈리아에서 활동하지 않았다. 다하우 기념관 측도 1943년까지는 다하우 수용소에 여성이 없었으며 람베르그 씨에 관한 기록도 찾을 수 없었다고 밝혔다.

당시 주민기록에 따르면 람베르그 씨는 1939년 이탈리아령 티롤의 레논에 거주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1946년 주거불명으로 기록이 삭제됐다. 또 카페키 교수는 1942년 7월 레조넬에밀리아에 있는 아버지 집으로 이사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티롤의 역사학자 게라르트 슈타이나허 씨는 “그의 감동 스토리를 역사 속에서 검증하려고 했지만 잘 들어맞지 않았다”고 말했다.

아버지의 행적에도 의문이 제기됐다. 1937년 기록에는 그의 직업이 공군 파일럿이 아닌 전보 기사로 기재돼 있다. 카페키 교수의 기억에는 아버지가 제2차 세계대전 중 전사한 것으로 되어 있으나 이탈리아 국방부는 아버지의 참전 기록을 찾지 못했다.

김재영 기자 redfoot@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