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엘리트 ‘공직 선호’ 옛말

  • 입력 2007년 10월 26일 03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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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HSBC 그룹의 야마다 하루노부 부사장이 1981년 통상산업성(현 경제산업성)을 떠나 미국의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로 옮겼을 때 일본의 주요 신문들은 이 소식을 전면에 걸쳐 보도했다.

핵심 정부 부처의 촉망받는 고급 공무원이 공직을 떠난다는 사실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 공직을 그만두고 기업이나 은행, 로펌 등으로 직장을 옮기는 젊은 관료 이야기는 뉴스거리가 못 될 정도로 흔한 일이 돼 버렸다.

경제 활동이 정부에서 시장 주도로 개편되고 규제 완화의 바람이 불면서 한때 공직에 몰리던 인재들이 영향력 있고 급여 수준도 높은 민간 분야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인재들의 탈(脫)공직 현상이 어느 곳보다 두드러지는 나라는 ‘관료들이 지배하는 나라’로 알려졌던 일본이다.

일본 경제주간 마이니치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2002∼2006년 공직을 중간에 그만둔 ‘커리어 관료(고시 출신 고급 공무원)’의 수는 292명으로 집계됐다. 20년 전(1982∼1986년)의 85명에 비하면 3배 넘게 증가한 수치다.

대학생들 사이에서도 공직 선호도는 추락하고 있다. 4년제 대학 졸업자를 대상으로 하는 국가공무원 1종 시험 응시자가 올해는 2만2435명으로 지난해보다 14.6%나 줄어 감소 추세를 이어갔다.

고급 공무원을 배출해 온 도쿄대 법학부의 경우 졸업생들 가운데 정부 부처에 들어간 수가 2003년 86명에서 올해는 63명으로 줄어 ‘취업 이변’으로 꼽히기도 했다.

인재들이 공직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박봉에다 규제 완화 추세로 공무원들이 가졌던 권한이 예전만 못해졌기 때문이라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하루노부 부사장은 최근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과의 인터뷰에서 “1970, 80년대 공무원들은 전후의 혼란을 수습하고 경제 재건을 견인하는 주역이라는 자부심이 있었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3년 전 후생노동성을 떠나 학교로 옮긴 나카노 마사시 효고현립대 교수는 “(요즘 공무원의) 일은 고되고 보람도 없다”고 말했다.

미국도 정부의 고위직에 있다가 월가로 옮기는 경우가 많다.

올해 33세에 불과한 디나 하비브 파월 국무부 교육문화담당 차관보는 올해 5월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로 옮겼다. 지난해 7월엔 로버트 졸릭(현 세계은행 총재) 국무부 부장관이 골드만삭스 국제담당 부회장으로 옮겨갔다.

경제 주간 비즈니스위크가 5월 미국 대학생들이 첫 직장으로 선호하는 곳을 조사한 결과 10위 안에 포함된 정부 부처는 국무부(공동 3위)와 중앙정보국(CIA· 5위) 두 곳뿐이었다.

박윤식(경영학) 조지워싱턴대 교수는 “우수한 인재들은 월가 등 민간부문으로 빠지고 공직에는 나중에 간부로 영입되는 것을 (출세) 코스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부 부문의 비중이 큰 프랑스도 예외가 아니다.

고위 공무원 양성소로 알려진 국립행정학교(ENA) 졸업생들도 민간 분야를 기웃거리고 있다.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의 특별보좌관을 지낸 석학 자크 아탈리 씨는 “최고 엘리트인 ‘에나르크(ENA 졸업생)’가 정부보다는 돈도 많고 영향력이 큰 민간기업 쪽으로 쏠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인지 현 프랑스 정부 각료들 가운데 에나르크는 발레리 페크레스 고등교육 장관 한 명뿐이다. 자크 시라크 전 대통령 시절에는 장관 12명 중 7명이 에나르크였다.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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