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글로벌 이슈 주도권 “美, 따라오라”

  • 입력 2007년 10월 13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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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차례 세계대전 이후 국제사회에서 주도권을 잃고 ‘미국과 다른’ 모델로 스스로를 부각해 온 유럽. 철 지난 보호주의와 복지국가 모델을 고집하다 뒤늦게 국경 없는 경쟁과 개혁의 대열에 합류했다. 늙고 게으른 유럽은 재빠른 미국에 늘 한 발 뒤져 왔지만 최근엔 변화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몇몇 글로벌 이슈에선 미국에 앞서 주도권을 쥐기 시작했다.

▽환경=유럽은 최근 환경 문제를 선도하며 미국을 수세에 몰아넣고 있다.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는 2005년 재무장관 시절 경제학자 니컬러스 스턴 경에게 지구온난화가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를 의뢰했다.

스턴 경은 보고서에서 “지구온난화는 세계대전이나 경제공황과 버금가는 사회경제적 혼란을 금세기, 혹은 다음 세기에 일으킬 수 있다”며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해 각국이 당장 매년 국내총생산(GDP)의 1%를 쓰지 않으면 앞으로 GDP의 20%에 해당하는 경제적 손실을 각오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스턴 보고서’는 즉각 전 세계에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세계의 기업인과 지식인들이 모인 올 1월 스위스 다보스 세계경제포럼(WEF)에서도 기후 변화가 지구적 당면 문제로 집중 거론됐다. 환경 문제는 원래 주요 의제로 예정돼 있지 않았으나 참가자들의 투표 결과 최우선 논의 과제로 선정되는 이변이 나타났다.

이어 2월 발표된 유엔 기후변화위원회(IPCC) 4차 보고서는 지구온난화가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인위적인 것임을 과학적으로 확정했다.

이 같은 일련의 움직임을 국제정치적으로 결집한 주인공은 과학자 출신인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였다. 올해 주요 8개국(G8) 정상회의의 의장을 맡은 메르켈 총리는 6월 독일 하일리겐담에서 열린 G8 회의에서 그동안 교토의정서를 거부하고 온실가스 문제에서 독자 노선을 고집해 온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을 설득해 ‘환경정책을 재검토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국제금융=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위기는 ‘국제금융 기관의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는 유럽의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에는 베어스턴스, 씨티, 메릴린치, 골드만삭스, 리먼브러더스, 모건스탠리 등 월가 최고의 투자은행이 줄줄이 관련됐다. 특히 은행과 신용평가회사의 애널리스트들이 모기지 회사의 위험을 수개월 전에 미리 알고서도 감추는 데 급급했던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줬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지난달 양국 정상회담에서 국제금융기관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행동에 착수하기로 합의하고 주요 선진국들, 특히 미국의 공조를 촉구했다.

유럽은 선진국 금융기관의 지배구조를 투명하게 개선해 위기가 제때 고객에게 전달되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한편 실질적인 힘을 갖는 국제기구를 만들어 금융 시장을 감독하자고 요구하고 있다.

미국 의회와 금융당국도 월가의 투명성에 의문을 갖고 조사와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파리=송평인 특파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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