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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러시아 학자들 ‘동북아 고대국가’ 학술회의

입력 2007-10-05 03:19업데이트 2009-09-26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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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극동국립대에서 열린 ‘동북아 고대국가의 역사’ 국제학술회의에 참석한 남북한과 러시아 역사학자들. 앞줄 왼쪽부터 김유철 김일성종합대 교수, 노태돈 서울대 교수, 전동철 김일성종합대 교수, 다비트 브로디얀스키 극동국립대 교수, 장치혁 고려학술문화재단 회장. 블라디보스토크=권재현 기자
“고구려가 존속한 705년간 중국에선 35개국이 명멸했다. 고구려가 중국의 속국이었다면 그중 어느 나라의 속국이었단 말인가.”(서길수 서경대 교수)

“러시아가 스푸트니크호를 쏘아 올렸을 때 중국인들은 ‘중국이 1000년 전 송나라 때 개발한 것(화약으로 쏘는 불화살)을 러시아는 이제 개발했다’고 주장한 사람들이다.”(다비트 브로디얀스키 극동국립대 교수)

“역사는 왜곡한다고 해서 왜곡되는 게 아니다.”(김유철 김일성종합대 교수)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2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선 남북역사학자들이 러시아학자들과 함께 고구려와 발해에 대한 연구 성과를 발표하는 국제학술회의가 개최됐다. 러시아 극동국립대와 한국의 고려학술문화재단이 공동 주최하고 국제교류재단이 후원했다. 전체 주제는 ‘동북아 고대국가의 역사’였지만 고구려와 발해를 속국이라 주장하는 중국 동북공정에 대한 지적이 많았다.

장치혁 고려학술문화재단 회장 등 8명의 남한 학자는 동북공정을 정면 반박했고, 정치건 김일성종합대 역사학부장을 단장으로 한 북한학자들은 ‘중국’이나 ‘동북공정’을 입에 담지 않은 채 우회 비판했다. 김유철(66) 김일성종합대 교수는 ‘북위와의 관계에서 본 고구려의 높은 대외적 지위’ 발표문에서 435∼534년 고구려와 중국 북방의 패자였던 북위의 외교관계가 고구려 주도로 이뤄졌음을 규명했다. 김 교수는 △북위의 라이벌이었던 북연이 멸망하자 북위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수만 대군을 동원해 북연왕의 고구려 망명을 도운 점 △고구려 장수왕과 문자명왕이 사망했을 때 북위 황제들이 직접 애도식을 거행한 점 등을 그 근거로 꼽았다. 그는 “고구려는 봉건 중국 왕조에 당당히 맞선 동아시아의 강대국이었다”며 “이런 고구려를 두고 속국이니 지방정권이니 하는 주장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노태돈 서울대 교수는 한국에만 있는 성씨인 박씨가 발해 유민의 이름에 등장하는 점을 토대로 발해와 신라의 활발한 교류 가능성을 검토했다. 노 교수는 박혁거세에서 비롯한 신라 진골 귀족의 성씨로만 나오는 박씨 성이 고려 태조 8년(925년)과 21년(938년) 각각 1000호와 3000호를 이끌고 고려로 건너온 발해 유민 박어(朴漁)와 박승(朴承)에서 발견된다는 사실을 포착했다. 그는 고려로 넘어온 발해 고관귀족의 경우 왕이 성을 내려 줬을 때는 반드시 관련 기록이 있는데 이들에겐 그런 기록이 없다면서 이들의 성이 처음부터 박씨였다고 분석했다.

70대의 러시아 고고학계의 원로 다비트 브로디얀스키 교수는 “중국의 천하는 늘 그 중심에 중국을 두고 주변국은 모두 작은 섬으로 그려 놓은 13세기 중국지도와 같은 발상에 머물고 있다”고 비판했다.

블라디보스토크=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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