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중시’ 日총리 탄생하나

  • 입력 2007년 9월 15일 03시 01분


코멘트
■ ‘포스트 아베’ 급부상한 후쿠다

회사 다니다 총리인 아버지 비서로 정계 입문

신사참배-헌법개정 반대… 대북관계 변화 예고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71·사진) 전 일본 관방장관이 ‘포스트 아베’를 결정하는 자민당 총재선거에 입후보할 의향을 13일 밝히면서 급격한 ‘후쿠다 쏠림’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각기 출마를 고려하던 파벌 중진들이 “후쿠다가 나온다면…”이라며 출마를 접고 후쿠다 지지를 선언하고 나선 것. 이미 출마를 밝혔던 누카가 후쿠시로(額賀福志郞) 재무상도 후쿠다 지지로 돌아섰다.

일본 언론은 14일 자민당에서 아소 다로(麻生太郞) 간사장이 이끄는 아소파 16명을 제외한 거의 모든 파벌이 후쿠다 씨를 지지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후쿠다 지지를 결정한 파벌 소속 의원을 합하면 300명이 넘는다. 또 무파벌 의원들에게 영향력이 큰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도 그에 대한 지지 방침을 내비쳤다.

당초 유력시되던 아소 간사장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와의 동반책임론에 발목이 잡혀 세를 전혀 얻지 못하고 있다.

이번 총재 선거는 387명의 국회의원 표와 141명의 지방당원 표, 즉 528표로 승부가 결정된다. 아소 간사장은 지방 표에 눈을 돌리고 있으나 141표 모두를 얻더라도 승리는 어렵다.

이처럼 아베 총리의 전격 사임 발표 이후 혼미에 빠진 판도를 정리하고 있는 후쿠다 야스오는 누구인가.

1936년생인 그는 1976∼78년 총리를 지낸 후쿠다 다케오(福田赳夫) 씨의 장남. 그가 총리가 된다면 일본에서는 사상 첫 ‘부자(父子) 총리’가 탄생한다.

그는 석유회사에서 평범한 회사원 생활을 하다가 부친이 총리가 되자 40세에 비서로 정치에 입문했다. 54세인 1990년에 중의원 의원으로 처음 당선됐고, 64세인 2000년 모리 요시로(森喜朗) 내각에서 관방장관으로 취임한 ‘늦깎이 정치인’이다.

이후 고이즈미 내각에 이르는 2004년까지 1289일간 관방장관으로 일하는 기록을 세웠다. 고이즈미 내각에서는 ‘그림자 총리’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지근거리에서 총리를 보좌했다.

2004년 5월 연금 미납 파동에 책임을 지고 관방장관직을 내놓았으나 실은 고이즈미 당시 총리의 연이은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라는 것이 정설이었다.

그는 아시아 외교 중시, 야스쿠니신사 참배 반대, 헌법 개정 반대 등 고이즈미 전 총리나 아베 총리와는 다른 노선을 취하고 있다.

관방장관 시절 대북 노선을 놓고 “일본의 국익을 위해서는 납치 문제 등을 내세워 경제 제재를 하기보다는 국교 정상화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일본 정부 내 대표적 ‘비둘기파’로 분류된다.

권력욕이 없는 평범하고 합리적인 정치인이란 평을 받고 있으나 대중적 인기는 없는 편이다. 워낙 표정이 없어 기자들 사이에서는 ‘포커페이스’로 유명하다.

권력에 집착하지 않는 태도는 지난해 ‘포스트 고이즈미’ 선거 과정에서도 나타났다. 그는 아베 총리의 가장 유력한 대항마로 꼽혔지만 7월 초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면서 ‘북풍’이 불자 스스로 사퇴했다.

그의 아버지 후쿠다 다케오 전 총리는 특히 외교 분야에서 성과를 남겼다. 1977년 ‘후쿠다 독트린’을 발표해 일본의 군사대국화 포기와 동남아 국가들에 대한 경제 원조를 약속했다. 1978년 일본이 중국과 평화조약을 체결하는 데에도 기여했다.

그는 지난해 4월 고이즈미 정권의 아시아 외교 실패를 비판하며 아버지의 후쿠다 독트린을 발전시킨 새로운 아시아 정책을 내놓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런 그가 총리가 돼 자신의 소신을 펼친다면 주변 아시아 국가와의 외교는 지금과 크게 달라질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대북 관계에도 변화가 올 가능성이 적지 않다.

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