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살아있다/아편전쟁上]각국의 교과서를 비교하다

  • 입력 2007년 7월 18일 15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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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이 지역의 근현대사를 어떻게 배우고 있는가.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지. 각각 널리 사용되고 있는 중학생용 교과서를 비교하고, 교과서를 만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번은 아편 전쟁과 메이지 유신에 대해서이다.》

■ 일본-아편전쟁 담백한 기술

도쿄 서적의 “새로운 사회 역사”는 ‘제5장 개국과 근대 일본의 역사’에서 아편전쟁을 다루고 있지만, 그 기술은 담백하다.

아편을 엄격하게 단속한 청나라에 대해, 1840년 영국은 군함을 보내 굴복 시켰습니다(아편 전쟁). 그 결과, 상하이 등의 항구를 개항시키고 홍콩을 수중에 넣은 영국은 영사 재판권을 인정받는 등 청나라에 불평등한 조약을 강요하였습니다.

교과서의 전체 내용은 일본사를 중심으로, 아편전쟁은 어디까지나 개국 후에 줄곧 근대화를 추진해 온 일본사를 이해하기 위한 배경으로 쓰여져 있다.

1950년대에는 ‘전진하는 유럽’과 ‘뒤떨어진 아시아’라는 대비로 설명했었지만, 그러한 표현은 없어졌다. 현재의 교과서에서는 대청 무역 적자에 고심하던 영국이 아편의 밀수출을 시작했다는 점을 명기하고 있다. 도쿄서적의 와타나베 노리오(渡辺能理夫) 사회 편집부장은 “아시아가 뒤떨어져 있었다고 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역사학계의 견해가 반영된 결과”라고 말했다.

학습지도요령은 메이지 유신에 관해, ‘복잡한 국제 정세의 와중에 독립을 유지하고 근대 국가를 형성해 나간 정부와 인물들의 노력을 알 수 있도록 한다. 폐번치현(廃藩置県 번의 폐지와 현의 설치), 학제•병제•세제의 개혁, 신분제도 폐지, 영토의 획정을 다룬다’고 정하고 있으며, 어느 교과서건 이에 따라 기술하고 있다.

도쿄 서적 판에서는 메이지 유신에 관해 12쪽을 할애하고 있다. 영토 획정에 대해서는 ‘국경을 획정하는 것은 근대 국가로서 중요한 과제였습니다’ 라고 설명한다. 또한 류큐 왕국을 일본에 편입시켜 오키나와현으로 한 ‘류큐 처분(琉球処分)’에 대해서도 ‘군대의 힘을 배경으로, 이에 반대하는 류큐 사람들을 억누르고 오키나와현을 설치했습니다(류큐 처분)’ 라고 기술하고 있다.

(요시자와 다쓰히코 吉沢龍彦)

■ 중국-중화 민족의 저항을 강조

중국은 아편전쟁을 ‘근현대사의 시작’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인민교육 출판사의 『중국 역사』는 아편전쟁에 대해 5쪽에 걸쳐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아편전쟁을 다루고 있는 단원의 제목이 ‘침략과 반항’이라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침략뿐만이 아니라 중화 민족이 어떻게 저항했는가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예를 들어, 린쩌쉬(林則徐)의 아편 처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아편 처분은 중국 인민의 아편 금지 투쟁의 위대한 승리이며, 밖으로부터의 침략에 반대하는 중화민족의 단호한 의지를 분명히 한 것이었다. 이 투쟁을 지도한 린쩌쉬는 의심할 여지없는 민족의 영웅이다.

메이지 유신은 세계사 교과서(인민교육 출판사의『세계 역사』)에서 2쪽 남짓한 분량으로 설명되고 있다.

중국의 학습지도요령에 해당하는 “역사과정표준” 작성에 참여한 주한구오(朱漢国) 북경 사범대 교수는 “메이지 유신은 일본의 역사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확실히, 일본을 전통 사회로부터 근대 사회로 변화시킨 중대한 사건이었다”라고 말했다. ‘일본의 메이지 유신’을 다룬 부분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메이지 유신에 의해서, 일본은 쇄국정책을 펴던 봉건 사회로부터 자본주의 국가로 전환되었다. 반식민지 국가가 되지 않았던 것은 일본의 역사에서 중대한 전환점이었다. 그러나 일본은 힘을 키운 뒤, 곧바로 대외 침략과 확장이라는 군국주의의 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또한 19세기 말 중국에서는 일본의 메이지 유신을 모방하여, 인재 등용 등의 개혁을 진행하려 한 ‘무술 변법(戊戌変法)’이 일어났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교과서는 ‘왜 메이지 유신은 성공한 반면, 무술 변법은 실패했는가’를 조사할 것을 학생들에게 과제로 던지고 있다.

(사토 가즈오 佐藤和雄)

■ 한국-일본의 대륙 침략의 전개 과정을 서술

한국의 국사는 국정인 “국사”교과서로, 세계사는 “사회” 교과서로 배운다. 아편 전쟁은 국사가 아닌 세계사라는 위치 설정이다. 그 이유를, 교육인적자원부의 구난희 교육 연구관은 “조선에서의 아편 전쟁의 영향은 간접적인 것이었다”고 설명한다. 금성출판의 『사회 2』에서는 ‘동아시아의 근대적 성장’ 부분에서 아편 전쟁을 취급하고 있지만, 간단히 8줄로 기술하고 있다.

한편, 메이지 유신에 대해서는 같은 교과서에서 1쪽을 할애하고 있다:

메이지 정부는 봉건제를 폐지하고, 국왕 중심의 입헌 군주제를 채택하였다. 또한, 신분 제도와 토지 제도, 조세 제도 등을 개혁하고 신식 교육을 실시하였으며, 적극적으로 산업을 진흥하여 자본주의를 크게 발전시켰다. 이로써, 일본은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근대 국가로 성장하였다.

기본적으로는 긍정적인 평가이지만, 바로 이어 ‘일본의 대륙 침략’이라는 항목을 설정하여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아시아 각국이 열강의 식민지나 반식민지 상태로 전락하고 있을 때, 메이지 유신에 성공한 일본만이 근대 국가로 성장하여 제국주의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청나라, 러시아와의 전쟁을 거쳐, ‘마침내 조선의 주권마저 빼앗았다’라고, 지도를 덧붙여 대륙 침략의 전개 과정을 싣고 있다. 교과서 집필자는 “메이지 유신에는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 측면이 있으므로, 그것을 사실대로 기술했다”라고 설명한다.

국사 교과서에서도, 갑신정변(1884년)을 일으킨 김옥균 등 개화파에 대해서 ‘메이지 유신을 본떠 근대 국가를 이루고자’했다고 유신의 영향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사쿠라이 이즈미 桜井泉)

■ 대만-“자금성(紫禁城)의 황혼”이라며 냉담

주요 3사의 교과서 중 하나인 난이서국(南一書局)의 『국민 중학•사회』에서는 아편전쟁에 대해 1페이지밖에 할애하지 않고 있다. 단원의 제목은 “자금성의 황혼”이다. 자금성이란 청조의 왕궁(현재의 고궁)이며, ‘황혼’이란 청조의 쇠퇴를 의미한다. 제목에서부터 중국과는 표현 방법이 다르며, 어딘가 냉담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이 교과서의 편집지도위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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