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자 관리’가 국가 장래다]<3>‘요람에서 무덤까지’ 유럽

  • 입력 2007년 4월 11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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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후 생활 걱정 없어요”네덜란드 수도 암스테르담 시내에서 자동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렘브란트 풍차 공원. 전기엔지니어로 일하다 은퇴한 얀 스토커(69·왼쪽), 티니 스토커(68) 씨 부부가 한가로이 조정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이들은 “사회보장제도 덕분에 은퇴생활에 큰 불편이 없어 좋다”며 웃었다. 암스테르담=김상수  기자
“노후 생활 걱정 없어요”
네덜란드 수도 암스테르담 시내에서 자동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렘브란트 풍차 공원. 전기엔지니어로 일하다 은퇴한 얀 스토커(69·왼쪽), 티니 스토커(68) 씨 부부가 한가로이 조정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이들은 “사회보장제도 덕분에 은퇴생활에 큰 불편이 없어 좋다”며 웃었다. 암스테르담=김상수 기자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서북쪽으로 70km 정도 떨어진 오스도르프 시(市). 100여 가구가 사는 은퇴자 공동주택으로 들어가자 제니 스나이더 바이크(71·여) 씨가 ‘어서 오라’며 반갑게 손짓을 했다.

집 안에는 주방 화장실 침실 어느 곳을 둘러봐도 문턱이 없었다. 노약자들이 휠체어를 타고 돌아다닐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시에서는 이런 공동주택을 여러 곳에 지어 거동이 불편한 은퇴자에게 공급한다. 월세는 568유로(약 68만 원)로 일반주택 월세의 절반 수준이다.

[연재]‘은퇴자 관리’가 국가 장래다
- <1> 돈 없고 갈 곳 없는 한국
- <2> 시스템으로 관리하는 미국
- <3> ‘요람에서 무덤까지’ 유럽
- <4> 은퇴자가 대접받는 일본
- <5> 한국에 남겨진 과제
그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남편 프레트 항크 판 바이크(91) 씨와 함께 살고 있다.

“3, 4명의 의사가 공동주택에 상주하고 있기 때문에 언제든 부를 수 있어요. 식당을 그만둔 뒤 매달 1224유로(약 146만 원)의 연금을 받는데 월세가 싸 생활하는 데 큰 불편이 없어요.”

유럽은 사회보장이 워낙 잘돼 있어 ‘은퇴자 천국’으로 불린다. 풍요로운 노후의 기초가 되는 연금제도는 19세기 유럽에서 탄생했다.

○은퇴자 경제적 파워 막강

네덜란드의 고령자는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지난해 말 현재 네덜란드 인구의 22.9%에 이르는 55세 이상 고령자가 2025년에는 40%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이들의 경제적 파워는 막강하다. 네덜란드 전체 개인 자산의 65%, 민간 소비의 30%가 55세 이상 고령자들의 몫이다.

네덜란드의 세계적인 금융회사 ABN암로의 빔 발스타인 금융연구소장은 “최근 은퇴자들이 명품(名品) 소비에도 적극 나서는 등 이들의 소비 파워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며 “이들의 여유자산을 유치하기 위한 금융회사들의 경쟁도 치열하다”고 했다.

예를 들어 ABN암로는 계좌에 5만∼100만 유로(약 6000만∼12억 원)를 예치한 고객을 타깃으로 자산관리사가 투자 성향에 맞는 자산 배분 등 자산 관리를 집중적으로 해 주고 있다.

서구의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네덜란드 은퇴자의 경제적 파워는 탄탄한 연금제도가 기반이 됐다.

네덜란드의 연금제는 15∼65세의 모든 시민이 의무적으로 가입하는 국가연금(국민연금), 근로자의 95% 이상이 들어 있는 기업연금(퇴직연금), 고소득층이 가입하는 개인연금이 각각 50%, 40%, 10%의 ‘황금 비율’로 짜여 있다. 은퇴하면 은퇴 전 평균소득의 70%가량이 연금으로 나온다.

지난해 말 현재 연금자산 규모는 7520억 유로(약 902조 원)로 네덜란드 국내총생산(GDP·2005년 기준)의 162%에 이른다.

성인 자녀에 대한 뒷바라지 걱정이 없고, 세금 부담 때문에 재산 상속이 거의 없다는 점도 네덜란드 노인들이 풍족하게 지내는 요인이다.

암스테르담에서 거주하고 있는 교포 송창주(67) 씨는 “이곳 사람들은 재산을 자식에게 물려주지 않고 다 쓰고 죽는다”며 “국가에서 집세와 생활비를 지원하기 때문에 자녀들도 18세가 되면 대부분 독립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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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자산 투자 늘려 연금자산 확충

영국 은퇴자협회가 지난해 설립한 자선단체 ‘헤이데이(HEYDAY)’ 사무실로 들어가자 활짝 웃는 노인들의 사진이 시선을 끌었다.

헤이데이의 에일사 오길비 이사에게 “헤이데이가 무슨 뜻이냐”고 묻었더니, “당신 인생의 전성기(heyday)는 은퇴 이후에 온다’는 뜻이라고 했다.

헤이데이에선 4만6000여 명의 회원에게 재무 컨설팅 및 건강 정보를 알려 주고, 꾸준한 사회활동 및 원만한 대인관계를 위해 각종 조언도 한다.

영국은 1908년부터 70세 이상의 저소득층 노인에게 연금을 지급하는 노령연금제를 실시할 정도로 일찍부터 은퇴자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 왔다.

영국의 근로자들은 은퇴 전엔 국가연금과 기업연금에 보험료를 납부하고, 은퇴 후 이를 돌려받으면 연금펀드에 투자하거나 연금의 75%를 의무적으로 개인연금에 예치해야 한다. 연금자산을 보험사나 자산운용사에 예치하고 죽을 때까지 매달 일정액을 보장받는 셈이다.

종합금융그룹 HSBC 데이비드 클레어 이사는 “영국 은퇴자들의 자산 배분은 70%가 간접투자, 10% 부동산, 나머지 20%는 현금이나 채권으로 구성돼 있다”고 소개했다.

예금, 채권 등 전통적인 안전자산보다 주식을 포함한 간접투자 등 위험자산에 투자해 은퇴 후 퇴직자산을 불리고 있다는 얘기다.

물가가 비싼 영국에서는 연금 외에 역모기지(주택을 금융회사에 담보로 맡기고 생활비를 타다 쓰는 것)를 적극 활용해 은퇴자금을 조달하기도 한다.

○일자리 창출로 연금 재정난 해결

유럽의 은퇴자 관리에도 고민은 있다.

평균수명 연장으로 연금을 받아 가는 노인이 갈수록 늘어나면서 연금 재정이 곧 바닥날 위기에 처한 것이다.

한동안 유럽에선 ‘조기 은퇴’가 유행이었다. 은퇴 전 소득의 약 70%에 이르는 금액이 보장되다 보니 서둘러 은퇴하려는 근로자가 급증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에서도 젊은 층에 일자리를 마련해 주기 위해 조기 은퇴를 부추긴 측면이 일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숙련된 근로자들이 줄줄이 은퇴하면서 생산성이 눈에 띄게 떨어졌고, 연금 재정에도 타격이 왔다.

이에 따라 유럽 각국은 연금 재정 적자를 타개하기 위해 잇따라 연금 개혁안을 내놓고 있다. 개혁안의 골자는 ‘일을 더 오래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연금 보험료는 더 많이 걷고 연금 수령 기간은 줄어들어 연금 재정 개선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영국은 연금 수령 나이를 65세에서 단계적으로 68세까지 올리기로 했고, 네덜란드는 조기 퇴직 시에는 연금 세금우대 혜택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유럽은 연금 개혁과 함께 고령자 직업교육 지원 등 고용 촉진 방안을 마련해 더 많은 노인이 일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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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 잘 대처하면 위기 아닌 기회”▼

“고령화는 위기가 아니라 기회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은퇴자 관리를 잘하면 경제에 오히려 도움이 될 수 있죠.”

영국 옥스퍼드 시에서 만난 조지 W 리슨(54·사진) 옥스퍼드대 고령화연구소 부소장은 고령화를 ‘새로운 도전과 기회’라고 강조했다.

이게 무슨 말일까. 노인 인구가 늘어나면 젊은이들이 떠안는 세금 부담이 몇 배 많아지고, 잠재성장률이 떨어져 국가 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데…. 의아했다.

덴마크 네덜란드 영국 등을 오가며 30여 년간 고령화와 은퇴자 문제를 연구한 리슨 교수는 “고령화된다고 나라가 퇴보한다고 생각하는 고정관념을 버려라”고 했다.

“미국 유럽은 고령화가 빨리 진행됐지만 경제가 후퇴하지 않았습니다. 가용자산이 충분한 50대 이상 세대들이 은퇴 이후 활발한 소비를 하면서 국가 경제에 도움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리슨 교수는 ‘일자리 창출’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노인이 된 뒤에도 여전히 경제활동인구로 남아 있다면 세수(稅收)와 연금재정 확대의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2000년 채용과 직업훈련에 연령 차별을 금지하는 고용지침을 제시하고 각 회원국의 시행을 권고하고 있다.

네덜란드는 2004년 채용 시 연령 차별을 금지했다. 또 독일은 지난해 50세 넘어 취업할 때 근로자와 고용주에 각종 혜택을 주는 ‘이니셔티브 50플러스’ 계획을 발표하는 등 유럽 각국이 은퇴자 채용에 적극적이다.

리슨 교수는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한국은 ‘나이 든 자원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며 “정부와 기업은 일하고 싶은 은퇴자들이 일할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특별취재팀<경제부>

이강운 차장(팀장) kwoon90@donga.com

런던·옥스퍼드·암스테르담=김상수 기자 ssoo@donga.com

도쿄=이나연 기자 larosa@donga.com

워싱턴·뉴욕·피닉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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