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라크 프랑스 대통령, 대선 불출마 선언

  • 입력 2007년 3월 12일 16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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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여러분께서 부여한 임기가 끝나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다른 방식으로 여러분께 봉사할 때가 왔습니다."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이 11일 TV 연설을 통해 4월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공식 선언했다. 사실상 정계 은퇴 의사를 밝힌 것.

1962년 조르주 퐁피두 대통령의 참모로 정계에 입문한 뒤 파리 시장, 총리, 대통령을 두루 거치고 45년의 정치 인생을 마감하는 의미 깊은 연설이었다.

시라크 대통령의 은퇴 선언에 따라 프랑스 정계는 본격적인 세대교체를 이루게 됐다. 유력 대권주자인 니콜라 사르코지, 세골렌 루아얄, 프랑수아 바이루는 모두 2차 세계 대전 이후에 태어난 전후 세대다. 이들은 모두 과거 정치와의 단절을 외쳐왔다.

▽레임덕 최소화 역시 '고단수'= 시라크 대통령이 3선에 도전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은 오래전부터 유력하게 나돌았다. 그럼에도 불출마 공표를 이날까지 최대한 늦춘 것은 임기 말 권력 누수 현상(레임덕)을 최소화하려는 의도에 따른 것.

그는 10분간의 짧은 연설에서 "프랑스인들은 극단주의와 인종 차별을 배격해야 하며 유럽연합(EU)을 지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권 대선주자인 사르코지 후보에 대한 지지를 선언할지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였지만 그는 이날 끝내 지지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 은퇴 선언을 하면서도 지지 선언을 유보함으로써 영향력을 끝까지 유지하려는 노련함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영욕의 45년 정치 인생= 시라크 대통령은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며 미국의 일방주의를 견제했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받는다. 그러나 경제 회복, 사회 개혁 등 국내 문제에선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으로 지적된다.

그는 '강력한 공화국'을 주창하는 전형적인 드골주의자다. 1995년 대통령에 취임한 직후 핵실험 재개를 발표해 국제 사회의 반발을 불러 일으켰으나 국익을 앞세워 핵실험을 강행했다.

2003년 그는 이라크 전 반대를 주도했다. 더불어 중동 문제 해결과 아프리카 빈곤 퇴치에 적극 개입하며 국제 여론을 주도하는 능력을 보였다.

시라크 대통령은 그러나 2005년 국민투표에서 유럽 헌법이 부결되면서 정치력에 큰 타격을 입었다. 이어 그해 말 대도시 교외 지역에서 터진 대규모 소요 사태로 인해 지지율이 급락했다. 높은 실업률과 재정적자 심화, 국가 경쟁력 약화를 불러온 경제 정책 성적도 신통치 않은 것으로 평가된다.

그는 때로 위기에 처하면 정치적 견해를 바꿔가며 국면을 능란하게 헤쳐 나가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카멜레온 보나파르트', '매력적인 거짓말쟁이' '변덕이 심한 바람개비'와 같은 부정적인 별명들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

▽영국 언론 매서운 반응= 국내외 반응은 찬사와 비난으로 엇갈렸다. 장-피에르 라파랭 전 총리와 대선 주자 프랑수아 바이루는 그의 업적을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사회당의 로랑 파비위스 전 총리는 "시라크 재임 기간 동안 프랑스는 시간을 낭비했다"고 비판했다.

경제 일간 라 트리뷘은 12일 "프랑스 경제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해결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일간 라 크루아는 "유럽 헌법 부결만 아니었어도 그는 명예롭게 떠날 수 있었다"면서 "지나친 자신감이 문제였다"고 꼬집었다.

영국 언론들의 비판은 더욱 매서웠다. 일간 텔레그라프는 "누군가 은퇴할 때는 좋은 것들만 얘기하기 마련이지만 시라크의 경우에는 그렇게 하기 어렵다"고 보도했다. 가디언은 그를 "변덕쟁이"라고 지칭했으며 파이낸셜 타임스(FT)는 "영원한 기회주의자"라고 꼬집었다.

FT는 그러나 "그는 세계 2차 대전 때 유태인을 추방한 프랑스의 전과를 용기 있게 인정했다"고 추켜세운 뒤 "미국의 일방주의 정책에 반대하면서 '늙은 유럽'을 이끌었다"고 평가했다.

파리=금동근특파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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