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대선 ‘낯선 이력서’ 많다

  • 입력 2007년 1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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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흔히 ‘WASP’가 지배하는 사회로 불린다. 백인(White), 영국계(Anglo-Saxon), 개신교도(Protestant)를 가리키는 WASP는 미국 주류사회를 이끄는 세력으로 지금까지 거의 모든 대통령을 배출해 왔다.

가톨릭인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일한 예외에 속한다.

대통령의 정치입문 전 직업도 법조인(빌 클린턴, 리처드 닉슨), 정부 관리(조지 부시), 기업인(조지 W 부시)이 대부분이었다.

영화배우 출신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같은 예외도 있기는 했다.

그러나 이제 변화의 바람이 부는 것일까. 2008년 11월의 대선을 준비하는 공화·민주당의 잠재후보들이 역대 어느 선거보다 다채로운 경력과 배경을 지녀 눈길을 끈다.

3일 사실상의 출마선언을 한 미트 롬니(공화)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는 한국에서 ‘말일성도 예수 그리스도 교회’로 불리는 모르몬교 신자다. 모르몬교 신자가 미국 내 인구의 8%를 차지한다지만 WASP 지배 역사를 볼 때 그의 급부상은 사변(事變)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그는 컨설팅회사인 베인&컴퍼니 사장 출신으로 시장 경쟁력 구조조정을 화두로 삼는 최고경영자(CEO)형 정치인이다. 아버지가 미시간 주 주지사를 지냈다.

민주당 선두권을 형성한 버락 오바머 상원의원은 케냐 출신 아버지와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흑인이다. 그가 후보로 선출될 경우 미 역사상 첫 흑인 후보가 된다.

하버드대 법대 출신이지만 불우한 청소년기를 거치면서 마약에 손을 댔다는 글을 자서전에 쓰기도 했다. 정치입문 전 월가 진출을 시도하기도 했으나 대신 시카고 흑인빈민지역에서 시민운동가로 일했다.

2004년 민주당 부통령 후보였던 존 에드워즈 전 상원의원은 변호사. 그러나 기업 또는 정부의 변호사가 아니라 20여 년간 자동차사고, 의료사고 피해자에게 배상금을 받아 내기 위해 법정에 직접 서며 ‘밑바닥’에서 커 온 소송변호사 출신이다.

그는 노스캐롤라이나 주에서 5세 소녀가 수영장 바닥의 배수구 뚜껑이 갑자기 빠지면서 빨려 들어가 내장이 파열된 사고 소송을 맡아 1997년 승소했다. 당시 배상금만 250억 원. 메모 없이 1시간 반 동안 최후변론을 편 일이 보도되면서 일약 스타로 떠올랐으며 이듬해 현역 상원의원을 물리치고 당선됐다.

공화당의 선두주자인 존 매케인 상원의원은 해군 제독을 지낸 할아버지, 아버지의 뒤를 이어 23년간 군에 복무했다. 베트남 전쟁에 해군 조종사로 참전했다가 격추된 뒤 ‘하노이 힐튼’으로 불리던 포로수용소에서 5년 반이나 모진 고문을 견뎌 내며 버텼다. 군복을 벗은 뒤 한때 맥주 유통사업에도 손댔다.

제2차 세계대전 영웅인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을 제외하면 대통령이 되기 전 직업군인 생활을 한 사람은 7년간 복무했던 카터 대통령이 지금까지 유일하다.

이탈리안계인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은 후보가 되면 2차대전 이후 주지사나 상원의원을 지내지 않은 첫 대통령 후보가 된다.

2001년 9·11테러의 복구 작업을 이끌며 ‘미국의 시장’이란 별명을 얻었다.

민주당 선두주자로 평가되는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이 대통령 후보가 될 경우 첫 여성 후보가 되는 것은 물론 대통령 부인이었던 인물이 백악관에 복귀하는 사례가 된다.

여성 부통령 후보는 과거에 한 차례 있었다. 1984년 민주당은 월터 먼데일 후보의 러닝메이트로 제럴딘 페라로 하원의원을 선출했다. 클린턴 의원이 대통령 당선으로 이어지면 1988년 이후 백악관을 ‘아버지 부시-남편 클린턴-아들 부시-아내 클린턴’의 순서로 두 가문이 돌려 맡는 기현상이 빚어지게 된다.

워싱턴=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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