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블로그’ 국경초월한 자선 한마음

  • 입력 2006년 12월 8일 02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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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오후 4시 서울 서초구 서초동 다음커뮤니케이션 사옥에서는 작지만 특별한 자선모임이 열릴 예정이다.

이날 바자회의 이름은 ‘남아공 에이즈 고아 돕기 자선모임’. 주최 단체도 후원 기업도 없다. 자선모임 참가를 확실히 약속한 사람만 벌써 100명이 넘었지만 참가자들은 아직 서로의 얼굴도, 진짜 이름도 모른다.》

그러나 벌써 많은 참가자가 손수 만든 친환경 수세미와 앞치마, 퀼트 가방, 직접 찍은 사진 등의 물품을 기증했다. 이날 수익금은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의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에이즈)으로 부모를 잃은 고아들이 자급자족할 수 있는 텃밭을 만드는 데 쓰인다.

이날 자선모임은 10월 중순 남아공에 사는 한국인 블로거 심샛별(35) 씨가 인터넷에 올린 소박한 제안에서 비롯됐다. 두 달간 인터넷 공간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 남아공에서 시작된 작은 목소리

3년 전 남아공으로 이민 간 심 씨는 허름한 판잣집에서 하루 한 끼도 제대로 먹지 못하며 비참하게 생활하는 고아들을 보고 작은 힘이나마 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그는 남아공 어린이를 돕는 한 다국적 재단의 ‘희망의 저녁’ 운동에서 힌트를 얻었다. 이 운동은 몇 명의 지인을 저녁 식사에 초대한 뒤 받은 음식 값으로 에이즈 고아를 돕는 것.

심 씨의 첫 제안은 평소 알고 지내던 네댓 명의 블로거와 이런 작은 모임을 여는 것이었다. 그러나 블로거의 힘은 생각보다 놀라웠다. 심 씨가 자선모임 제안을 블로그에 올리자 수백 개의 덧글과 수십 개의 트랙백(Trackback)이 달렸다. 트랙백이란 블로그의 글에 댓글을 달되 직접 글을 쓰지 않고 자신의 블로그에 글을 썼다는 사실을 알려 주는 것.

제안 전엔 심 씨를 알지도 못했던 블로거들이 트랙백을 통해 구체적인 기증 물품을 제안하고 자선모임의 진행을 도왔다. 이 덕분에 꼬리에 꼬리를 물고 사이버 공간에서 심 씨의 제안이 퍼져 갔다.

처음엔 비난 댓글도 많았다. “가까운 북한에도 기아가 많은데 들어보지도 못한 먼 나라 아이들을 왜 돕느냐”는 내용이 다수였다.

그러나 블로거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트랙백으로 자선모임의 진심을 알렸다. “세상 모든 사람을 도울 수 없다면 작은 힘이라도 모아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심 씨의 믿음이 블로거들 사이에 울림을 만들어 냈다.

○ 블로그는 참여의 매개체

브라질에 사는 한국 블로거는 앞치마를 만들어 보냈고 요리 노하우를 소개해 온 블로거는 수플레치즈케이크를 들고 바자회를 찾기로 했다. 생활용품 제작 노하우를 소개해 온 블로거는 제안 이후 친환경 수세미를 무려 100개나 만들었다. 캠코더로 찍은 영상 뉴스를 블로그에 올려 온 블로거는 뉴스 영상이 담긴 자신의 캠코더를 내놓았다.

이 밖에도 바자회 때 상영할 에이즈 고아 실태 동영상에 자막을 넣어 주겠다는 블로거, 심 씨가 한국에 도착하기 전까지 기증 물품을 보관해 주겠다는 블로거 등 누가 시키지 않아도 블로거들 스스로 역할을 분담했다.

이어 바자회를 열 마땅한 장소를 찾지 못해 걱정하던 블로거들의 소식이 다음커뮤니케이션 블로그 담당자 고준성 씨에게 전해졌다. 고 씨는 회사를 설득해 회사 건물 3층을 자선모임 장소로 사용할 수 있게 허락을 받았다.

자선모임에 참가하는 블로거들은 “잘 모르기 때문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여겼던 많은 문제가 블로그를 통해 이슈화되고 있다”며 블로그는 실천과 참여의 매개체라고 입을 모았다.

고 씨는 “블로그는 ‘1인 미디어’로서 단순히 온라인에 자신만의 세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정보와 실천의 공론장으로 진화하고 있다”며 “예전 같으면 대답 없는 메아리로 묻혔을 작은 제안이 커다란 목소리로 현실화되는 모습이 놀랍다”고 말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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