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네오콘, 9·11로 뜨고 이라크에서 지다

  • 입력 2006년 12월 6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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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평화를 수호해야 할 책임을 진 미국은 그 힘을 사용하는 데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1997년 6월 3일, 미국 워싱턴의 미국기업연구소(AEI) 건물 내에서 ‘새로운 미국의 세기를 위한 프로젝트(PNAC)’라는 모임 결성식이 열렸다. 폴 울포위츠, 존 볼턴, 루이스 리비, 엘리엇 코언, 로버트 케이건 등이 결성선언문에 서명했다. 21세기 초반 지구촌에 ‘명성’과 ‘악명’을 동시에 날린 네오콘(신보수주의자)들의 명부나 마찬가지였다. 그로부터 9년 반이 흐른 3일. 볼턴 유엔 주재 대사가 낙마함으로써 이들 네오콘은 미 행정부의 중심에서 사실상 물러났다.》▽네오콘의 성쇠=‘트로츠키주의자’로 불린 네오콘의 초기 핵심 인물 중에는 동부 아이비리그 출신의 엘리트들, 특히 ‘가난한 학생을 위한 하버드’로 불렸던 뉴욕시티칼리지 출신이 많았다.

그 뒤 네오콘 2, 3세대는 “미국의 힘으로 세계의 도덕적 선을 구현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강경한 우익 성향을 발전시키다 2001년 9·11테러를 계기로 행정부 핵심세력으로 등장했다.

폴 울포위츠 국방부 부장관을 실질적인 정점으로 리처드 펄 국방부 정책자문위원, 루이스 리비 부통령비서실장 등이 상층부 그룹을 형성했고 국방부 국무부 백악관에 학맥과 인맥으로 얽힌 네오콘이 수십 명 포진했다. 네오콘으로 분류되지 않지만 강경 보수파인 딕 체니 부통령,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이 이들의 든든한 후견인 역할을 했다.

하지만 2003년 이라크 침공은 네오콘 위세의 정점인 동시에 쇠퇴의 분기점이 됐다. ‘책상에서 짠 계획대로 새로운 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는 오만함을 비웃듯 이라크 상황이 내전으로 치달으면서 네오콘 내에서부터 분열이 생겼고, 하나 둘 요직에서 물러났다.

스티븐 해들리 백악관 안보보좌관, 엘리엇 에이브럼스 부보좌관, 로버트 조지프 국무부 군축차관 등이 현직에 남아 있지만 이제는 미 행정부 내 다양한 이데올로기 분파 중 하나로 위세가 줄어들게 됐다.

▽부시 행정부의 남은 2년=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볼턴의 유엔 대사 임기 연장을 포기한 것은 강경한 네오콘 철학을 거부했다기보다는 의회와 버거운 싸움을 벌이지 않겠다는 현실적 수지타산의 결과로 풀이된다.

부시 대통령은 5일 볼턴 대사와 카메라 앞에 선 자리에서 “지금 행복할 리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곧이어 폭스TV와의 인터뷰에서는 “볼턴 대사는 사안마다 성과를 이끌어 냈다. 미 상원의 얄팍한 정치 때문에 그를 보낸다”고 말했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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