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신저, 또 말 바꾸는 거요?”

  • 입력 2006년 12월 2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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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한 해는 그동안 미국 외교안보정책을 좌지우지했던 네오콘(신보수주의)그룹이 급격하게 파산의 길로 접어드는 해로 기록될지 모른다. 네오콘의 ‘21세기 프로젝트’로 불렸던 이라크전쟁의 실패 징후가 뚜렷해지면서 벌써부터 이탈 세력이 눈에 띈다.

리처드 펄 전 국방정책위원장과 데이비드 프럼 전 백악관 연설담당 비서관 같은 네오콘 논객들마저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무능 탓에 이라크 정책을 망쳤다”고 말을 바꾸는 상황이다.

이런 네오콘의 퇴조와 함께 누구보다 곤혹스러워하는 사람이 바로 헨리 키신저(83·사진) 전 국무장관일 것이다.

키신저 전 장관은 1970년대 데탕트 외교를 주도한 미국 현실주의 외교의 설계자. 국익을 위해선 칠레 피노체트 정권과 같은 독재정권 지원도 마다하지 않았고 베트남전쟁을 장기화해 무수한 인명 피해를 낳았다는 논란에서 아직도 자유롭지 못하다.

그런 철저한 현실주의자가 묘하게도 이데올로기와 미국 우위를 내세우는 네오콘 세력과 잘 어울렸다. 그는 이라크 침공도 지지했다. 전후 이라크 재건에 유엔의 참여와 외교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등 여러 가지 단서를 달았지만 공개적인 찬성 표명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이라크 철군 논란에 직면한 부시 대통령에게 “승리만이 유일한 전략”이라고 조언했다. 밥 우드워드 워싱턴포스트 부국장이 쓴 ‘부인하는 국가(State of Denial)’에 따르면 그는 “한 치도 양보해선 안 된다(Don't give an inch)”는 단호한 주문까지 덧붙였다.

그러나 11·7중간선거 이후 정치권의 풍향이 바뀌면서 키신저 전 장관도 얼버무림과 발뺌, 애매한 표현으로 자신이 쌓아 온 명성에 오점을 남기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역시 노련한 외교의 대가답다.

그는 주간 뉴욕매거진 인터뷰에서 자기가 그런 얘기를 했다는 말은 “완전한 거짓”이라고 단호하게 부인했다. 그러면서 “부시 대통령과 어떤 얘기를 나눴는지 말하기 어려운 점을 이해해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그는 얼마 뒤 잡지사에 전화를 걸어 발언을 수정했다. 그는 “내 말은 이라크와 관련해 그런 얘기를 한 기억이 없다는 것”이라며 “우드워드가 말을 지어낼 사람은 아니다”고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인터뷰 때와 달리 매우 상냥했다고 뉴욕매거진은 전했다.

‘변심’한 네오콘 논객들과 다르긴 하다. 그는 “나로선 잘되길 바랐다. 하지만 신문 칼럼을 썼다고 (전쟁의) 모든 단계를 열렬히 옹호한(cheerleading) 건 아니다”라며 자신의 영향력을 애써 축소하려 했다.

그는 부시 대통령과 두 달에 한 번, 딕 체니 부통령과는 한 달에 한 번 정기적으로 만났다. 백악관 연설문 비서관은 그를 찾아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체니 부통령은 “부시 대통령은 열렬한 ‘키신저 팬’”이라고 얘기할 정도였다.

키신저 전 장관은 이 대목에서도 “부시 대통령과의 대화 내용 대부분은 (이라크가 아닌) 다른 얘기였다”고 얼버무렸다.

그는 자신이 칼럼에서 쓴 대로 부시 행정부에 “이라크전쟁은 국제적 정당성과 외교적 해법이 중요하다”며 나름대로 쓴소리를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말을 액면 그대로 믿기 어렵다고 하는 사람이 많다.

그와 일했던 사람들은 “아첨꾼(flatterer), 따리꾼(courtier)인 키신저가 남이 듣기 싫어하는 말을 할 리가 없다”고 말했다. 오랜 친구인 브렌트 스코크로프트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그들에겐 그저 ‘키신저도 같은 생각이다’는 홍보거리였을 것”이라고 폄훼했다.

1977년 공직을 떠난 이래 키신저 전 장관은 과거 권력의 중심에 있던 시절을 끊임없이 정당화해 왔다고 주변 사람들은 얘기한다. 3971쪽(전 3권)에 이르는 그의 회고록은 온통 자신을 둘러싼 논란의 과거사를 윤색하는 내용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런 탓에 그는 수많은 적을 만들었다. 크리스토퍼 히친스 뉴욕 뉴스쿨 교수가 쓴 ‘키신저 재판(The Trial of Henry Kissinger·2001년)’은 그의 과거 죄상에 대한 전범 고발장에 가깝다.

유시 한히메키 제네바 국제대학원 교수의 554쪽짜리 본격 연구서 ‘결함 많은 설계사(The Flawed Architect·2004년)’는 그가 얼마나 비밀주의에 집착했는지, 백악관 내부의 권력투쟁에 능했는지를 낱낱이 보여 준다.

그러나 키신저 전 장관은 “그런 문제는 얘기 안 한다. 그런 책들이 내게 어떤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만 할 뿐 추가 언급은 피하고 있다.

2차례나 심장수술을 받았고 양쪽 귀에 보청기를 한 데다 한쪽 눈은 실명 상태인 키신저 전 장관. 하지만 그는 여전히 뉴욕 사교계의 단골손님이고 그 주변에는 정계와 재계, 언론계, 패션계 명사가 널려 있다.

키신저 전 장관은 이제 이라크 전략에 초당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과거의 현실주의자로 돌아간 것. 그는 이라크 철군에 대해서도 “반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번에도 ‘전체적 전략 아래서 이뤄진다면’이라는 전제를 달면서….

그는 ‘이번에도 양다리 걸치기 식으로 얘기를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내 나이가 여든이 넘었는데, 무슨 야심이 있겠느냐”고 반문했다고 뉴욕매거진은 전했다.

이철희 기자 klim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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