쫓겨난 ‘강경파 수장’ 추락한 ‘부시의 두뇌’

  • 입력 2006년 11월 10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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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쫓겨난 ‘강경파 수장’

후세인 제거 앞장선 럼즈펠드, 성난 민심에 결국 불명예퇴진

“왜 알 카에다에만 초점을 맞추려는 거요? 이라크를 포함한 국가 테러리즘 전반을 우리의 대응 목표로 분명히 설정해야 합니다.”

9·11테러 다음 날인 2001년 9월 12일 백악관에서 조지 W 부시 대통령 주재로 열린 국가안보회의(NSC). 도널드 럼즈펠드(사진) 국방장관은 “오사마 빈 라덴 제거를 목표로 동맹전선을 구축하겠다”는 콜린 파월 국무장관의 보고를 반박하면서 “지금 이 순간 우리가 목표를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미래가 바뀐다”고 역설했다.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 제거를 향한 럼즈펠드 장관의 집착은 그만큼 강했다. 그러나 그 집착이 결국 44년간 정·관·재계의 최고위직을 두루 거친 그를 불명예 퇴진시키는 암초가 됐다. 30세 때인 1962년 하원의원(일리노이 주)에 당선된 럼즈펠드 장관은 4선 의원을 거쳐 대통령 보좌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대사, 백악관 비서실장, 최연소 국방장관 등 요직을 역임했고 지미 카터 행정부 이후에도 중동 특사 같은 고위직을 맡았다.

NATO 대사 시절 워터게이트 스캔들로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탄핵 위기에 처하자 전화를 걸어 “대사직을 그만두고 워싱턴으로 달려가 (탄핵 국면 타개) 전략을 세우겠다”고 자청했다는 일화는 ‘도전’과 ‘목표’, ‘전략’을 중시하는 그의 면모를 보여 준다.

“분명한 목표 없이 일하는 것은 큰 죄악”이라고 역설해 온 그는 국방장관 취임 후 “냉전시대에 구축된 낡고 무거운 미군 시스템을 가볍고 이동성이 뛰어난 21세기형으로 바꾸겠다”며 해외주둔미군재배치검토(GPR)를 강력히 추진해 왔으나 결국 끝은 보지 못한 채 낙마했다. 한때 ‘미국의 섹시남’으로 꼽힐 만큼 인기가 높았지만 이제 인권단체들로부터 재임 중 ‘고문 묵인’ 혐의 등으로 고소당할 처지에 놓였다.

미 워싱턴포스트는 9일 그가 국방장관(Secretary of Defense)이 아닌 공격장관(Secretary of Offence)이었다고 지적했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 추락한 ‘부시의 두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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