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동영상’ 美선거 움직인다

  • 입력 2006년 10월 26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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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몬태나 주의 콘래드 번스 상원의원(공화). 11월 7일 중간선거에서 4선에 도전하는 그의 주변을 올 초부터 카메라를 휴대한 케빈 오브라이언(24) 씨가 맴돌았다.

불법체류자 문제를 개탄한 연설을 한 6월에도, 연설 도중 울린 휴대전화로 ‘자택 공사장의 과테말라 출신 인부’의 전화를 받은 8월에도 청년은 그 언저리에 있었다. 그리고 지난주 몬태나 육류가공단체가 주최한 농장법안(Farm Bill) 공청회에서 71세의 노 의원이 깜빡 조는 순간에도 그의 카메라는 어김없이 돌아갔다.

미 누리꾼 사이에서 ‘추적자(tracker)’로 불리는 이들이 동영상 파일을 올리는 곳은 유튜브(You Tube)라는 벤처기업이 만든 홈페이지다. 지난해 2월 만들어진 이곳에는 하루 평균 6만5000건의 동영상이 올라와 곳곳으로 퍼져 나간다. 유튜브는 이달 초 검색엔진 구글이 1조6000억 원에 사들이면서 주목을 받았다.

번스 의원이 졸았던 순간은 단 10초가량. 그러나 ‘번스 의원의 낮잠시간(Naptime)’이라는 제목의 이 동영상은 24일 현재 9만5000명이 클릭했고, 각종 블로그를 통해 삽시간에 번져 나갔다.

몬태나 주 유권자의 대부분인 농민들에겐 농장법안이 최대현안. 이런 만큼 “어떻게 이런 순간에 졸음이 오느냐”는 질타가 쏟아진다고 CNN방송이 23일 보도했다. 부패 로비스트 잭 아브라모프와의 연계설로 궁지에 몰려 고전하는 번스 의원으로선 억장이 무너질 일이다.

이처럼 유튜브가 대표하는 인터넷 동영상 시장은 미국의 정치 지형까지 바꾸고 있다. 아차 하는 순간→유튜브→공중파 방송뉴스→심야 토크쇼라는 하나의 유통구조까지 생겼다. CNN, 로스앤젤레스타임스 등 미국 언론매체는 앞 다퉈 개미 감시단의 힘을 보도하고 있다.

2008년 대통령선거의 유력한 후보였던 조지 앨런 버지니아 주 상원의원(공화)도 비슷한 처지에 몰렸다.

그는 올여름 거리연설 도중 인도계 민주당 지지 청년(20)이 자신을 끈질기게 근접 촬영하는 것을 봤다. 그는 손가락질을 하며 “저 친구는 마카카(macaca)로군”이라고 한마디를 던졌다.

이 동영상이 인터넷에 오른 뒤 기자들은 그 말뜻 찾기에 나섰다. 앨런 의원은 “그냥 만들어 낸 말”이라고 했지만 북부 아프리카 지역에서 사람을 원숭이에 빗대는 비속어라는 것이 밝혀졌다.

게다가 앨런 의원의 어머니가 알제리 출신 유대인이란 것이 이 과정에서 공개됐다. 인종 차별적이고, 거짓 해명까지 했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그는 낙승하리란 예상과 달리 공화당의 텃밭인 남부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미국의 정치평론가들은 “정치인이 TV 방송에서 기성의 이미지만 팔던 시절은 갔다”, “정치인은 24시간 몸조심해야 한다”는 말을 쏟아냈다.

물론 전후 사정을 무시한 채 순간의 실수로 수십 년 공들여 쌓아 온 정치 경력을 한순간에 무너뜨리는 것은 문제라는 반론도 만만찮다.

워싱턴=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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