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적 잡는 ‘테러와의 전쟁’

  • 입력 2006년 8월 31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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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와의 전쟁’이 남아시아에서 ‘추악한 전쟁’으로 변질되고 있다.

국제사면위원회(AI)는 30일 발표한 인권보고서에서 “파키스탄과 스리랑카 네팔 정부가 ‘테러와의 전쟁’을 명분 삼아 반정부 인사와 무고한 시민들까지 비밀리에 제거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1970년대 중남미에서 좌익 게릴라 소탕을 명분으로 3만여 명을 희생시켰던 ‘강제실종’ 사례가 이들 국가에서 재현되고 있는 것.

보고서에 따르면 남아시아 지역의 강제실종 규모는 과거 중남미에 비해선 작지만 상황의 심각성은 당시 못지않다.

파키스탄에서는 정부가 ‘테러와의 전쟁’을 앞세워 거리낌 없이 비밀 체포를 자행하고 있다. 강제실종 희생자는 이미 수백 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행방불명된 사람 가운데 일부는 쿠바에 있는 관타나모 미군기지까지 끌려가 억류돼 있는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스리랑카에서도 1년 전 보안군의 권한을 강화하는 새 긴급조치가 발효된 뒤 강제실종 사례가 크게 늘어났다. 올해 5월에는 타밀족 남자 8명이 힌두 사원에서 종교축전 준비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다가 한꺼번에 사라졌다. 스리랑카 인권위원회는 지난해 북부지방에서 62명이 강제실종된 것으로 집계하고 그 밖에 183건의 실종 사건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

네팔에서도 7월 정부 직속의 위원회가 실종 사건 600건을 조사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현지 인권단체는 강제실종자를 1000명 이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강제실종은 최악의 국가 범죄 행위로 꼽힌다. 가족에게까지 엄청난 고통을 주기 때문이다. 희생자 가족들은 당국이 “우리도 모른다”며 부인으로 일관하는 상황에서 사랑하는 사람의 행방을 애타게 찾아 헤매는 일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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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실종::

공권력에 의해 비밀리에 구금 혹은 살해된 후 행방과 운명이 공개되지 않은 상태. 1970년대 중남미에서 군사정권의 반정부 인사 ‘사냥’이 자행되면서 처음으로 사용된 표현.

김기현 기자 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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