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충식]고이즈미의 참배 ‘행패’

  • 입력 2006년 8월 16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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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가 15일 기어이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한 것은 ‘행패’라고 할 수밖에 없다. 한국과 중국이 ‘하필 일본제국 패전의 날에, A급 전범(戰犯)의 넋을 기리느냐’고 반대해 온 터다. 고이즈미 자신도 전에는 “전쟁을 배척하고, 평화를 존중하는 내 마음을 의심하게 해서는 안 된다”며 8·15 참배는 안 했다. 그러더니 내달 퇴임을 앞두고 “오늘(8·15)이야말로 적절한 날”이라고 말을 바꾸었다.

▷행패란 도리에 어긋나는 생떼요 폭행이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의 원조(元祖)라고 할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총리조차 고이즈미의 생떼를 꿰뚫어보고 “총리 후보로서 참배를 공약해 놓고 ‘개인의 참배’라고 우기는 것이 말이나 되느냐”고 비판했다. 가토 고이치 전 자민당 간사장도 “고이즈미가 참배는 ‘자기 마음의 문제’라고 우기지만, 총리의 외교에 관한 행동이 마음의 문제로 끝나겠느냐”고 질책했다.

▷일본어에는 마음 씀씀이에 관한 어휘가 유난히 다양하다. ‘고코로즈카이’는 깊이 배려하는 마음이다. ‘기쿠바리’는 세심한 주의나 배려를 뜻한다. ‘오모이야리’는 동정에 가까운 이해나 배려를 의미한다. 오키나와의 주일미군에 보태 주는 예산은 ‘오모이야리 예산’으로 불린다. 영어로 번역하기도 어려운 그야말로 지극히 일본적인 단어다. 그만큼 자기들끼리는 서로 마음을 헤아리며 행동하는 자세가 배어 있다.

▷고이즈미의 참배는 상대국들에 대한 배려는커녕 짓밟기이고, 그런 의미에서 분명 행패다. 일제에 침략당한 이웃, 한국인과 중국인의 오장육부를 뒤집어 놓겠다는 것 아닌가. 태평양전쟁 말기, 가미카제 특공대는 “야스쿠니 신사에서 다시 만나자”고 외치며 죽으러 갔다. 지난날 그 가미카제 전시관을 둘러보며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는 고이즈미. 그가 퇴임 직전에 야스쿠니 신사에 몸을 던졌다. 일본 국내에선 그를 향해 “고마워요!” “총리 만세!”라는 찬사가 터졌다. 그의 참배를 지지하는 여론이 ‘일본 국민의 행패’가 돼 이웃 아시아를 해치지 않으면 다행이련만.

김충식 논설위원 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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