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北미사일 ‘전화외교’…당사자 한국만 쏙 빠져

  • 입력 2006년 6월 22일 04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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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최근 북한 미사일 사태와 관련해 중국 일본 러시아 등 6자회담 참가국 정상들과 전화통화를 했지만 노무현 대통령과는 통화하지 않은 것으로 21일 확인됐다.

미 워싱턴의 외교소식통에 따르면 부시 대통령은 지난주부터 이번 주까지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과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통화했다.

토니 스노 미 백악관 대변인은 19일 브리핑에서 “부시 대통령과 장관, 고위관리들이 (북한을 제외한) 6자회담 참가국을 포함한 10여 개 나라 고위직들(heads)과 전화통화를 했다”고 밝혔다. 그는 부시 대통령과 직접 통화한 정상들이 누구인지는 공개하지 않았다.

스노 대변인의 애매한 브리핑 때문에 워싱턴타임스 등 미국의 일간지들은 부시 대통령의 ‘전화외교’ 대상이 10여 개 나라의 정상이라고 일제히 보도했지만 실제로 나라별로 ‘대우’가 달랐다.

결국 스노 대변인이 밝힌 ‘6자회담 참가국 정상’ 가운데는 북한을 제외하고 노 대통령만 빠졌다. 한미 양국 간에는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과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이 전화로 미사일 문제를 협의했다.

워싱턴 외교소식통들은 한미 정상이 사전에 전화 접촉을 시도하려는 움직임이 거의 포착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한 외교소식통은 “부시 대통령과 러시아, 중국 정상 간의 전화통화에서는 북한 미사일 문제 이외에도 이란 핵 문제 협조 당부가 중요 의제였다”며 “한국이 국제무대에서 중국과 러시아, 일본 3국과 동급에 놓이기는 어려운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에 청와대는 “한미 양국관계에서 이상 징후는 없다”며 불끄기에 나섰다.

정태호 청와대 대변인은 21일 “외교 관례상 정상 간 통화 여부는 알려줄 수 없다”고 했지만 청와대 관계자들은 이번에 한미 정상 간에 전화통화가 없었다는 사실을 대체로 시인했다.

정 대변인은 이어 “청와대와 외교부 등 실무라인에서 북한 미사일 사태에 대해 충분히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지난해에만 부시 대통령과 두 차례(6, 11월) 정상회담을 했고 실무 차원의 긴밀한 협의도 계속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북한 미사일 사태 같은 비상 상황에서 한국의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의 ‘전화외교’ 대상에 오르지 못한 사실은 한미관계의 현 주소를 그대로 드러낸다는 지적이 많다. 정부가 내세우는 ‘한미공조’에 ‘빨간 불’이 켜진 게 아니냐는 것.

북한 미사일의 발사 준비상황은 물론 발사 여부, 발사 이후 궤도 및 북한 동향 등 중요한 대북 정보 사항의 대부분을 미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감안할 때 부시 대통령의 ‘전화 누락’ 자체가 비상신호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된다.

정치권 일각에선 현 정부 출범 이후 ‘자주외교’를 표방한 한국의 대미정책과 ‘동북아균형자론’ 등으로 미국을 자극한 노 대통령에 대해 부시 대통령이 불편한 감정을 드러낸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정연욱 기자 jyw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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