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속서 나타난 고구려史… 中고분내용 ‘쉬쉬’

  • 입력 2006년 5월 10일 18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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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과 중국 접경에서 발견된 고구려 고분은 지금까지 확인된 고구려 고분의 40%에 가까운 방대한 분량이어서 고구려사 연구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해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중국 당국이 수력 발전을 위해 50년 전 별다른 조치도 취하지 않은 채 고분 지역을 수몰시킨 것으로 드러나 심각한 훼손이 빚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고구려 고분 2360기 발견=이번에 발견된 고분은 48년간 수몰돼 있다가 시설 보수를 위해 댐 수위를 낮추면서 모습을 드러냈다.

위치는 지린성 지안(輯安)시 칭스(靑石)진에 윈펑(雲峰) 댐이 건설되면서 수몰됐던 압록강 동쪽 지대. 고구려 도읍지였던 지안(輯安)에서 45km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발견된 고분 수는 2360기로 그동안 지안 일대에서 발견된 고분 6000여기의 40%에 육박한다.

량민, 추피, 스후(石湖), 화피(樺皮) 등 이 일대 고분군에서는 윈펑 댐 공사로 상류 지역이 수몰되기 직전인 1964년 5월에도 지린성 박물관 발굴팀에 의해 205기의 고분이 발견됐었다. 그러나 당시엔 댐 공기를 맞춰야 한다는 이유로 고분 전체를 발굴하지 않은 채 비교적 보존상태가 좋고 특징있는 적석묘, 방단적석묘, 계단적석묘, 봉토석실묘 등 30여기만 발굴했다.

▽한(漢)대 성터도 발견= 성터는 고분군에서 남쪽으로 약 20㎞ 떨어진 수몰지역에서 발견됐다.

신화통신은 고구려 고분에 관해선 상세한 내용을 전하지 않은 반면 성터는 '지린서 한대 고성(古城) 수면 위로 드러나'라는 제목으로 상세하게 전했다.

성터는 싼다오거우 진의 압록강 오른쪽 기슭, 해발 280m 되는 지대에 자리 잡고 있다. 발견 당시 성터는 1m 두께의 진흙에 덮여 있었다.

수면 위로 드러난 뒤 진흙을 벗겨낸 일부 성벽의 모양으로 보아 이 성은 전체적으로 직사각형 모양이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현재 남아 있는 성벽의 높이는 1.5m, 너비는 4m 가량이다.

길이는 서쪽 성벽이 180m, 북쪽 성벽이 220m이고, 북쪽에서는 성문이 발견되지 않았으나 남쪽에는 너비 6m의 성문이 있다. 동쪽과 남쪽 벽은 무너지고 없는 상태였다.

조사연구팀은 또 성터 북쪽에서 4세기 전후의 것으로 보이는 10여기의 적석묘도 발견했다.

▽윈펑 댐= 1958년 12월에 착공해 1967년 9월에 준공됐다.

댐에서 북쪽 상류 쪽으로 3.5㎞ 가량 떨어진 곳에 량민 고분군 등이 있고, 20㎞ 더 위쪽에 이번에 발견된 성터가 있다.

이들 고분군과 성터는 댐 건설로 수몰됐다가 댐 수위가 낮아짐에 따라 42년 만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윈펑 댐의 수위는 윈펑 수력발전소 보수 때문에 현재 41.13m로 낮아졌으나 이보다 낮은 지대에 위치하고 있는 고분과 성터는 아직도 수심 30m 아래에 잠겨있는 상태다.

베이징=하종대특파원 orionha@donga.com

■ 국내 학자들의 견해

▼최종택 고려대 교수(고고미술사)= 발견된 성곽이 중국 한나라 때 만들어졌다고 하지만 성곽과 고분군이 함께 발견된 것으로 봐서 고구려 것일 가능성이 높다. 특히 방어용 산성이 아닌 행정 구역용 평지성이어서 이 지역을 고구려가 강력하게 지배했다는 증거가 될 수 있다.

▼서영수 단국대 교수= 발굴지는 고구려 5부 중에서 동부지역에 해당하는 곳인데 동부는 연개소문의 출신지다. 부여와 고구려의 접경지였고 후대에는 발해의 서경이 인근에 들어설 만큼 입지조건이 좋았기 때문에 전략적 요충지였을 가능성이 높다.

▼서길수 서경대 교수(고구려연구회이사장)= 고구려 국내성이 있었던 지안과 린장 시 중간지역에 해당하며 지안의 장천1호분과 가깝고 린장 시에서도 최근 고구려 고분들이 대거 발굴된 적이 있다. 고구려 고분의 변천사연구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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