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誌 “美 교육강국 옛말, 이젠 자퇴공화국”

  • 입력 2006년 4월 11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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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유학, 기러기 아빠, 교육 이민, 여름 어학연수….

한국의 학부모들이 자녀들의 미국 유학을 놓고 한번쯤 고민해 봤음 직한 화두들이다. 그런 미국의 공립학교 평균 자퇴율이 30%에 이른다면?

시사주간지 타임은 9일 “미국 공립고교 입학생의 30%가 졸업을 못하고 중도에 탈락한다”는 장문의 기사를 실었다. 기사 제목도 ‘자퇴 공화국(Dropout Nation)’으로 붙였다.

▽자퇴율 30%=타임은 인디애나 주의 최대도시 인디애나폴리스 교외의 셸비빌 고교를 현장 취재했다. 이곳은 큰 부자도 없지만 극빈층도 거의 없는 평범한 농촌지역 학교. 이 학교에는 2002년 315명이 입학했지만 졸업반인 4학년(미국은 중학교 2년, 고교 4년제)에는 215명만 남아 있다. 무려 31.3%가 중도 탈락한 것.

이 수치는 미국 교육부가 가장 최근 자료라며 지난해 발표한 2002년 자퇴율 10.5%와는 큰 차이가 있다. 잡지는 “연방정부의 통계가 엉터리”라고 썼다. 실제 이 고교는 몇 년 동안 지역 교육청으로부터 ‘졸업률이 98%인 학교’로 평가받던 곳이다.

통계오류의 이유는 당국의 얼토당토않은 낙관론 때문이다. 중퇴생이 ‘나중에 GED(고교 졸업학력 인정 검정고시에 해당)를 볼 계획’이라고 말하면 졸업예정자로 분류됐던 탓이다.

마이크로소프트(MS) 빌 게이츠 회장이 세운 빌 게이츠 재단이 지난달 초 발표한 44쪽 분량의 보고서 ‘소리 없는 전염(Silent Epidemic)’에는 현실에 가까운 수치가 담겨 있다. ‘공립 고교생 3분의 1이 학교를 떠난다’는 것이 조사결과였다.

게이츠 회장은 지난해 미국 50개 주의 주지사들이 공동 주최한 한 행사에 초대돼 “망가진 미국 공교육을 살리지 않고, 많은 고교생이 외면하는 수학 및 과학교육을 강화하지 않고서는 중국과 인도를 상대하기 어렵다”고 연설했다.

또 하버드대 ‘시민권리 프로젝트’가 2005년 펴낸 보고서는 한국 교민이 다수 거주하는 로스앤젤레스의 고교에서는 45%만 졸업한다는 충격적 내용을 담고 있다. 백인과 아시아계는 평균을 많이 웃돈다는 해설이 붙어 있다고 LA타임스는 최근 보도했다.

교육부 공식자료는 인종별로 자퇴율의 차이가 크다는 점을 보여 주고 있다. 자퇴율은 아시아계가 3.9%로 가장 낮았고 백인(6.5%) 흑인(11.3%) 히스패닉(25.7%) 순이었다.

▽학교의 실패가 부른 위기=부모 세대에도 고교 자퇴는 있었다. 실제로 타임은 “자퇴생의 부모 가운데 25년 전 자퇴한 이들이 적지 않았다”며 자퇴의 대물림 가능성을 언급했다. 그러나 당시는 제조업 강국 미국이 고교 중퇴생을 블루칼라 노동자로 흡수해 ‘부족하지 않은’ 급여를 주던 시절이다.

하지만 요즘 고교 중퇴자들은 제조업의 부재로 위기를 맞고 있다. 저임금 노동자가 돼야 하지만, 불법 또는 합법 이민자와 함께 일자리를 나누거나 경쟁해야 할 처지다. 고교 중퇴자들은 “친구 대부분이 접시닦이 세차 청소 일을 하면서 지낸다. 우리들이 기대했던 멋진 세상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다.

빌 게이츠 재단의 보고서는 고교 중퇴자의 평균급여가 졸업자보다 연평균 9200달러(약 900만 원) 적다고 밝혔다. 미 전역 교도소 수감자들의 67%가 고교 중퇴자인 것으로 추정되며, 2002년 노스이스턴대 연구결과에 따르면 16∼24세의 중퇴자 가운데 거의 절반은 일자리를 찾지 못했다.

▽누가, 왜 학교를 등지나=‘소리 없는 전염’ 보고서는 꼭 공부를 못하는 학생이 학교를 떠나는 것이 아니라는 면담 기록을 제시했다. 3분의 1은 ‘학교 공부를 못 따라갔다’고 답했지만, 60%는 평균 C학점 또는 그 이상을 받았던 것이다.

실제 자퇴 사유로는 재미없는 수업, 학교에 흥미를 잃은 친구 사귀기 등이 주요 이유였다.

또 이 보고서는 중퇴자의 80%가 “학교를 떠난 것은 잘못이며, 기회가 주어진다면 고교과정을 이수하고 싶다”고 말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학력저하 및 자퇴생 증가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낙제학생방지법을 도입했다. 2002년 발효된 이 법은 2014년까지 모든 학생의 읽기와 수학능력을 일정 수준에 오를 수 있도록 학교에 요구하고 있다.

타임은 “자퇴생 이외에 밀려난 낙오자(pushout), 다니는 시늉만 하는 학교 내 낙오자(holdout)들도 있다”며 “학교가 자퇴를 심각하게 여기고 학생들에게 동기 부여를 해 주려는 노력이 절실하다”고 보도했다.


워싱턴=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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