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 노동법 반대시위… 주말 전국 150만명 참가

  • 입력 2006년 3월 20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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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정부의 새 노동법안에 반대하는 대학생 시위는 18일 전국에서 150만 명이 참가하며 최고조에 이르렀다.

시위 주최 측은 이날 파리에서만 35만 명이 참가했다고 밝혔으나 경찰은 8만 명으로 추산했다. 이날 시위에는 로랑 파비위스 전 총리 등 좌파 정치인도 대거 동참했다.

이날 시위도 16일 시위와 마찬가지로 평화 행진으로 시작됐으나 결국은 무력 충돌로 이어졌다.

일부 시위대는 차량에 불을 지르고 화염병과 돌, 빈 병을 던지며 경찰과 맞섰다. 경찰은 최루탄과 물대포로 시위대를 저지했다.

마르세유에서는 시위대원들이 시청 건물에 올라가 국기를 끌어내린 뒤 ‘자본주의 반대’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내거는 사태도 발생했다.

이날 충돌로 경찰과 학생 20여 명이 다쳤으며 시위 참가자 166명이 경찰에 연행됐다. 경찰이 곤봉과 방패를 휘두르며 시위대를 진압하는 모습이 곳곳에서 목격됐다.

학생단체와 노동단체 등은 이날 공동성명에서 “최초고용계약(CPE)법안을 48시간 안에 철회하지 않으면 더욱더 강력한 시위를 벌이겠다”고 경고했다.

이날 평화적으로 진행되던 파리에서의 시위가 폭력적인 양상을 보인 것은 오후 6시 반경이었다. 행진의 종착지인 나시옹 광장 부근에서 갑자기 검은 연기가 솟아올랐다. 일부 시위 참가자가 길가에 주차된 승용차에 불을 지른 것이다. 뒤이어 곧바로 돌과 빈 병, 최루탄이 오가는 공방전이 벌어졌다. 주변 가게의 유리창은 이내 박살이 났다.

하지만 충돌이 일어난 곳을 제외한 대부분의 시내 광장에선 축제 분위기가 연출됐다.

경찰과 시위대가 대치한 현장에서 불과 20여 m 떨어진 곳에서도 밴드의 흥겨운 연주에 맞춰 대학생들이 춤추고 있었다. 핫도그를 파는 노점상은 매출 늘리기에 바빴다.

아이들과 함께 시위를 구경하러 나온 부모들, 개를 데리고 산책 나온 노부부, 광장 한가운데서 키스를 하는 연인들도 눈에 띄었다. 프랑스혁명 100주년을 기념해 광장 한가운데 세워진 ‘공화국의 승리’ 동상 위에까지 올라가 시위를 구경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춤추며 즐기는 모습과 돌을 던지며 경찰과 충돌하는 모습이 공존하는 게 흥미로웠다. 한국에선 좀처럼 볼 수 없는 장면이었다.

한 시민은 “춤추는 이들은 대학생이고, 돌을 던지는 이들은 무력시위를 즐기러 온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번 사태로 전국 84개 대학 가운데 60개 대학이 문을 닫았다. 노동계는 정부가 CPE 법안을 철회하지 않으면 전국 총파업을 벌일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시위가 갈수록 커지자 자크 시라크 대통령은 도미니크 드빌팽 총리에게 학생, 노동계와 대화하라고 주문했다. 학생들이 최후통첩으로 제시한 48시간이 끝나는 이번 주 초쯤 소요 사태는 새로운 분수령을 맞게 될 전망이다.

파리=금동근 특파원 gold@donga.com

■‘미래불안감’따른 방어적시위…체제개혁‘68혁명’과는달라

최근 프랑스의 대학생 시위는 1968년 5월 혁명에 비교되기도 한다. 학생들이 주도한 뒤 노동계가 동참한 점, 소르본대 점거 농성과 경찰의 강제 해산 등 양상이 비슷하다. 하지만 시위 발단과 전개, 규모 등 여러 측면에서 68혁명과 크게 다르다는 분석이 많다.

68혁명을 주도하며 영웅 대접을 받았던 다니엘 콩 방디 유럽의회 의원은 18일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시위는 68년 상황과는 정반대 성격”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68년에 학생들은 미래에 대한 긍정적 비전을 갖고 공격적으로 임했다”면서 “그러나 지금 시위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학생들이 방어적으로 나선 것”이라고 양자를 구분했다.

68혁명은 권위주의와 엘리트 체제를 개혁하려는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띠었다. 학생들은 진보된 세상을 추구하는 이상을 현실화하려 행동에 나섰고 이후 사상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반면 이번 시위는 ‘일자리 안정’이란 이익 수호 차원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시위 참가자 규모도 아직은 68혁명에 미치지 못한다.

이번 사태는 68혁명보다 에두아르 발라뒤르 총리에게 타격을 주었던 1994년 학생시위 양상에 더 가깝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당시 학생들은 최저임금법에 반발해 전국적인 시위를 벌였다.

파리=금동근 특파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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