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 컨슈머 11억명 ‘소비의 블랙홀’

  • 입력 2005년 10월 6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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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5일 인도 제2의 도시인 뭄바이에서 열린 ‘세계 소비제품 박람회’에는 굴지의 소비재 생산기업 1000여 개가 몰려들었다. 특히 세계 최고의 유통기업인 미국의 월마트, 홍콩의 의류업체 지오다노, 독일의 메트로AG가 많은 관심을 표명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이날 “서구 소비제품 구입을 즐기는 인도의 ‘신(新)소비층’ 3억 명이 연간 2006억 달러를 지출한다”면서 “이들의 소비가 급증하면서 백화점과 쇼핑몰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다”고 보도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인도의 ‘신소비층’을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설명했다.

“인도의 수도 뉴델리에 사는 루주타 조그(24) 씨는 요구르트를 사다 먹는 일로 며칠 전 시어머니와 다퉜다. 시어머니는 ‘가정에서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요구르트를 사먹는 것은 낭비’라고 꾸짖었지만 조그 씨는 ‘번거롭게 만들어 먹을 필요가 있느냐’는 생각이다. 그는 ‘요구르트, 버터, 냉동치킨은 물론 이전에는 희귀했던 브로콜리, 로즈메리 같은 외국 채소도 쉽게 구할 수 있다’면서 ‘쇼핑하는 일은 정말 즐겁다’고 말했다.”(4월 2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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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YT는 인도의 경우 인스턴트 음식 시장이 1998년 이후 70% 증가했다고 전했다. 인도 경제가 고도성장을 거듭하면서 주머니 사정이 넉넉해져 외식하는 가구도 지난 10년 동안 50% 이상 늘어났으며 그 규모는 50억 달러에 이른다는 것.

조그 씨와 같은 ‘뉴 컨슈머(New Consumer·신소비층)’가 세계 경제에 지각 변동을 일으키고 있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이들이 고급 제품을 구입하고 자신이 원하는 라이프스타일을 즐기면서 ‘소비 블랙홀’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명품 시장 장악=세계 최대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중국이 전 세계 명품 시장의 13%를 장악하고 있으며 이 수치는 15년 뒤 23%, 20년 뒤 30%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세계적 금융기관인 메릴린치도 10년 후에는 중국이 일본을 제치고 세계 최대 명품 소비국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반면 세계 명품 소비의 40%를 차지하고 있는 일본은 10년 후에 명품 시장점유율이 30% 이하로 떨어질 것으로 예측했다. 일본이 중국에 명품 소비국 왕좌를 내줘야 할 날이 머지않았다는 얘기다.

명품 소비의 확대는 단지 중국, 인도와 같은 아시아 신흥소비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영국의 경제전문지 파이낸셜타임스는 최근 석유 수출 강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 베네수엘라,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 말을 갈아탄 러시아, 우크라이나에서도 신소비층의 명품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11억 명에 가까운 ‘신소비층’=생태학자인 노먼 마이어스 미국 듀크대 교수는 7월 세계미래회의가 ‘2005년 세계의 미래’란 주제로 마련한 세미나에 발표한 보고서에서 지난 10년 동안 평균 5% 이상 성장률을 기록한 인도 브라질 중국 등 20개국을 ‘신흥소비대국’으로 분류했다. 마이어스 교수에 따르면 2000년 기준으로 신흥소비대국에 속한 신소비층은 10억5900만 명으로 세계 인구의 29%를 차지한다. 이들의 구매력은 2000년 현재 6조3000억 달러.

1980년대 초만 해도 신소비층은 1억 명도 안 됐다. 선진국의 구매력 있는 소비층 8억5000만 명에 비하면 초라한 수치였다.

하지만 신소비층 규모는 2000년 이후 급증했다. 2005년 현재 선진국 소비층 규모를 훌쩍 뛰어넘었고 2010년이면 16억 명에 육박할 전망이다. 또 이들의 구매력은 전 세계의 3분의 1 수준인 15조40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LG경제연구원 문권모(文權模) 선임연구원은 “이들은 인터넷과 위성TV를 통해 서구 선진국의 소비재와 서비스에 눈높이를 맞춰 가고 있다”면서 “특히 중국과 인도를 중심으로 한 신흥소비국의 경제가 세계화되고 서구식 생활양식이 확산됨에 따라 신소비층의 소비 규모는 더 커질 전망”이라고 말했다.

이호갑 기자 gdt@donga.com

●세계최대 자동차시장 부상

신흥 소비대국 ‘친디아(Chindia·중국과 인도를 합친 단어)’에서 자동차는 유행 필수품이다.

중국자동차공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은 모두 510만 대의 자동차를 생산했다. 2001년 생산 규모는 233만 대였다. 전문가들은 “2015년에는 중국의 ‘뉴 컨슈머’ 1000명당 70명이 차를 소유하게 돼 세계 평균을 웃돌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생태학자인 노먼 마이어스 미국 듀크대 교수가 7월 세계미래회의에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 중국의 자동차 보유 대수는 4200만 대로 추산된다.

인도 자동차시장도 중국의 뒤를 쫓아 급격하게 팽창하고 있다. 인도의 자동차산업은 연간 20%의 성장을 보이고 있으며 전문가들은 향후 3년 동안 한 해에 적어도 100만 대의 자동차가 증가할 것으로 예측했다. 전문가들은 ‘친디아’의 놀라운 성장세에도 불구하고 자원 및 에너지 소모적일 뿐 아니라 환경 파괴적이라는 결함도 안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인구 13억 명의 중국과 10억 명의 인도에 자동차가 넘쳐 나는 장면을 상상만 해도 인류에게는 대재앙”이라고 우려했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지속가능한 소비族으로 거듭나야

신소비층은 전 세계 자동차의 26%, TV의 60%, 컴퓨터의 33%를 사용하고 있다. 특히 이들이 사용하는 자동차 연료와 전자제품에 드는 전기는 대부분 화석연료에서 얻은 것이다. 화석연료의 사용으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량은 전 세계 배출량의 40%를 차지하고 있으며 2010년이면 50%를 넘어서 지구온난화의 주범이 될 전망이다.

신흥소비대국 가운데 몇 개국은 이미 지속 가능한 소비를 위한 방안을 찾고 있다. 브라질의 쿠리티바에서는 직장인의 75%가 자가용 대신 통근버스를 이용하도록 하는 대중교통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중국도 지속 가능한 소비를 소비자권리보호법에 명시하고 경제적인 특혜와 각종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함으로써 효율적인 소비를 유도하고 있다. 인도는 땅에 파이프를 묻어 물을 공급하는 새로운 관개시스템을 개발했다. 이 시스템은 물의 증발을 막아 이미 사용한 물을 다시 활용할 수 있는 비율을 30%에서 70%로 늘렸다.

지속 가능한 소비는 미래 세대의 삶을 위협하지 않을 만큼만 천연자원을 사용하는 것. 또 환경오염이 발생하는 물질의 사용을 최대한 자제하면서 현세대는 물론이고 후세대의 삶의 질까지 고려한 적정 수준의 소비를 하는 것을 말한다.

이호갑 기자 gd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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