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 살아보니/이유경]‘웃어야 할 때’ 아직도 몰라요

  • 입력 2005년 9월 30일 0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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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대학 생활을 하며 가장 어려운 것이 ‘웃어야 할 때’와 ‘웃어선 안 되는 때’를 구분하는 일이다. 학교 극장에서 일본인 친구 메구미와 함께 영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를 봤던 얼마 전은 ‘웃어야 할 때’를 놓쳐 뒤통수를 맞은 날이었다.

남자 주인공의 호텔방에 한밤중에 들어가 스타킹을 핥으라는 건지(lick), 찢으라는 건지(rip) 알아들을 수 없는 영어로 그를 불쌍하게 유혹하는 일본인 콜걸, 그리고 한참 동안 일본어로 이것저것을 설명하는 일본인 감독의 지시를 영어 한마디로 옮겨 버리는 어이없는 일본인 통역관…. 극장을 가득 채운 미국인 대학생들은 이 장면들에서 여지없이 폭소를 터뜨렸다.

인종으로나 성(性)으로나 남자 주인공보다는 일본인 콜걸에 가까운 필자도 그 장면들이 왜 재미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 ‘대부’를 만든 프랜시스 코폴라 감독의 딸, 소피아 코폴라의 작품인데 설마 아시아인(나이지리아, 케냐, 수단 사람들이 우리에게는 모두 아프리카 흑인이듯 일본, 중국, 한국, 동남아시아인은 평균적인 미국인에게 모두 ‘아시아인’이다)을 비웃자고 만들었겠어” 하는 생각도 들었다. 또 영화를 본 사람은 알겠지만 그 영화의 메시지는 인종 문제에 매여 있지 않다.

하지만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하는 일본인들을 보고 옆에 앉은 메구미는 얼굴이 벌게져 있었다. 이 때문에 필자 역시 백인 학생들과 함께 한번 웃어넘기기에는 편치 않은 심정이었다.

이 상황은 그래도 ‘웃어서는 안 되는 때’에 웃는 것보다는 낫다고 해야 할까. 필리핀에서 온 유학생 친구는 어느 날 사회학 수업의 일환으로 영화를 봤다. 미치광이로 설정된 한 백인 남성이 길을 걸어가던 흑인 여성에게 “당신, 저녁 좀 차려”라고 명령하는 장면에서 그만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그녀는 미국인 학생들의 싸늘한 시선과 마주쳐야 했다. 미국인 학생들은 그 장면에서 남성우월주의와 인종차별주의를 보았던 것이다. 필리핀에서 자라 다른 인종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던 그녀가 영화 속에 함축된 ‘문화적 차이’를 눈치 채지 못한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인지 모른다.

미국 대학은 토론과 질문을 환영하고 격려하지만, 아주 가끔은 질문하는 사람을 당황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한번은 수업시간에 ‘백인의 특권’이 무엇이냐고 손을 들고 질문한 적이 있었다. 그 순간 아시안, 히스패닉, 몇몇 백인들로 구성된 동료 학생들의 눈이 휘둥그레지며 일제히 나를 쳐다보는 것이었다.

“미국에 살면서 어떻게 그걸 모를 수 있지”라면서 다들 열정적으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백인 남성들은 그들이 백인이고, 또 남성이기 때문에 항상 경주에서 앞서 있다고 보는 거지.”(재미 교포 학생)

“내가 아시아인과 백인을 두고 둘 중 누구를 뽑아야 한다면, 내 머릿속에서는 백인 남성을 골라야 한다는 명령이 내려지는 거야.”(백인 학생)

하지만 침을 튀겨 가며 백인 남성의 사회적 특권에 대해 설명하던 그들이, 단일 민족국가에서 자라 인종에 대한 인식이 자기들과 많이 다른 필자를 이해하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이유경 미국 웨슬리언대 영어영문학과 3년·본보 대학생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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