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帝치안유지법 위반자료로 본 在日독립운동

  • 입력 2005년 8월 12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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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 1

1944년 12월 30일 일본 히로시마(廣島) 경찰서가 조선독립운동에 가담한 용의자 시마즈 게이키치(島津惠吉)를 체포한다. 생명보험회사에 다니는 아버지 아래에서 자란 그는 1942년 히로시마로 건너와 (조선인) 중학교에 입학했다. 그는 “조선을 반드시 독립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며 동급생들을 선동한 혐의다.

○사례 2

1945년 2월 28일 히로시마 경찰서는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마쓰모토 가타노부(松本容鎭)를 체포한다. 그는 자신의 집에 친구들을 불러 모아 ‘조선독립’을 외쳤다. 공장에서 일은 거의 하지 않고 동료들에게 “독립운동을 함께하자”고 선동했으며 일본에서 먹고살기가 너무 힘들어 독립운동에 빠진 것 같다고 경찰은 밝혔다.

두 사례에 등장하는 사람은 모두 한국인이다. 이들은 일제강점기 말기에 일본에서 독립운동을 벌이다 일본의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검거되거나 기소됐다.

국가보훈처는 광복 60주년을 맞아 일제강점기 말기 일본 내 한국 독립운동의 실상을 보여 주는 자료를 모아 ‘치안대책요강 외 일본내무성자료’라는 책자를 11일 발간했다.

이 책은 일본 내무성이 1941년 6월 1일∼1945년 7월 말 치안유지법을 어긴 재일(在日) 한국인들의 기록을 모은 380장의 비밀문서로 구성돼 있다. 재일 역사학자 금병동(琴秉洞·77·전 조선대 교수) 씨가 소장한 문서를 보훈처가 책으로 발간한 것.

보훈처는 일본 각지의 경찰서가 한국인을 검거한 이후 작성한 조서를 직접 책에 실었다. 조서에는 한국인의 이름, 검거 날짜, 검거 이유 등이 자세히 기술돼 있다. 일부는 메모 형식으로 간단한 혐의 내용만 적혀 있기도 하다. 하지만 모든 자료가 일본어로 돼 있는 데다 많이 훼손돼 일반인들이 쉽게 알아보기는 어려운 실정.

책에 따르면 일본의 한국인 탄압은 1941∼43년에 집중돼 이 무렵 한국인들의 독립운동이 활발했음을 보여 준다. 1944년과 1945년에는 검거 또는 기소된 한국인의 수가 이전 3년에 비해 절반 이하로 줄었지만 기소유예가 1명도 없어 당시 치안유지법을 위반한 한국인들에 대한 처벌이 강화됐던 것으로 분석된다.

일제강점하 강제동원피해 진상규명위원회 정혜경(鄭惠瓊·45) 과장은 “일제 말기에 한국 학생들이 체제 비판적인 책만 읽어도 일본 공안당국이 연행해 갔다”며 “패전을 눈앞에 둔 일본이 본토 내에서 한국인의 봉기를 얼마나 두려워했는지 엿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보훈처는 전국의 국·공립 도서관과 대학 도서관, 독립운동 관련 연구기관 등에 이 책을 배포할 계획이다.

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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