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순덕]아라파트와 돈

  • 입력 2004년 11월 12일 18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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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팔레스타인과 결혼했다”던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이었다. 평생을 무장독립투쟁에 매달렸던 그가 1990년 환갑을 넘긴 나이에 서른네살이나 젊은 여자와 비밀결혼식을 올렸다. 프리랜서 기자로 찾아 온 그녀를 보고 넋이 빠진 터였다. 행복은 길지 않았다. “가자지구는 위생상태가 나빠서 병원에 못 간다”며 95년 프랑스에 가서 딸을 낳고는 대부분 호화호텔에 눌러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아라파트는 아내에게 매달 10만달러씩 보내 주었다.

▷그런 수하 알타윌 여사에 대해 뒷말이 끊이지 않는다. 측근들을 가까이 못 오게 막고는 비자금에 대해 밝히고 눈감으라고 아라파트를 채근했을 거라는 추측이 나돈다. 프랑스 검찰이 거액의 돈세탁 혐의로 조사했을 만큼 알타윌 여사는 ‘아라파트 부패’의 한 요인으로 꼽혀왔다. 팔레스타인 민족주의의 상징으로, 또는 테러리스트로 불리는 아라파트도 사랑에는 약했던 모양이다.

▷“아라파트는 어릴 때 대장 노릇하면서 명령 안 듣는 아랍애들을 때려줬다”고 그의 누나는 회상한다. 리더십이 뛰어났다는 자랑이지만 실제 아라파트 ‘권력의 원천’은 돈이었다는 게 이스라엘측 분석이다. 아랍은 물론 미국에서 받은 원조금과 팔레스타인의 세금, 불법으로 모아 굴린 돈 등 알려진 것만도 2억달러(‘포브스지’ 추정)에서 60억달러(미국과 이스라엘 정보기관) 사이다. 아라파트는 이 돈으로 막강한 비밀경찰을 유지하고, 측근의 충성을 샀다는 것이다.

▷독립운동을 하자면 돈이 필요한 건 사실이다. 허물 때문에 위업(偉業)이 폄훼돼서도 안 된다. 하지만 “아라파트가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위해 쓴 돈은 한 푼도 없다”는 게 2년 전 미국 CBS TV의 ‘60분’에 나온 회계사의 증언이다. 병사들처럼 좁은 침상에서 잠잤다는 그가 왜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 등지에 호텔과 리조트를 갖고 있었을까. 오슬로 평화협정 이후 이스라엘로부터 세금을 돌려받아 자기 명의로 텔아비브의 은행에 넣어두고는 행복했을까. 아라파트는 ‘라디오 팔레스타인’과의 인터뷰에서 “전쟁은 꿈이요, 평화는 악몽이다”고 한 적이 있다. 팔레스타인의 비극은 그의 아픔이자 동시에 황금이었던 셈이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고 하지 않던가.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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