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파트 사망]‘절대강자’ 없는 후계체제…권력암투 예고

  • 입력 2004년 11월 11일 18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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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의 사망을 계기로 팔레스타인은 대이스라엘 강경투쟁을 계속할지, 협상으로 평화를 유지할지 선택해야 할 갈림길에 섰다.

문제는 아라파트 전 수반의 공백 속에서 팔레스타인이 스스로 미래를 설계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는 점. 이스라엘과의 협상에 무게를 두는 노장파는 내부 지지기반이 약하고, 무장세력 등의 내부 지지를 받고 있는 소장 강경파는 외부의 개입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취약한 권력구조로 인해 팔레스타인의 운명이 내우외환(內憂外患)에 시달릴 가능성도 높다.

▽팔레스타인의 미래=팔레스타인인들이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미래는 낙관적이지 않다. 비관적이다. 이스라엘과 협상을 벌여 독립국가로 인정받을 수는 있겠지만 영토는 보잘것없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독립국가 인정도 미국의 전폭적인 지지 없이는 어려워 보인다. 그렇다고 강경 투쟁으로 일관한다면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오히려 더 빼앗길 수도 있다.

특히 아라파트 전 수반의 정치력을 아직 그 누구도 대체하지 못한다는 것도 팔레스타인 지도부의 고민. 따라서 1993년 오슬로협정을 통해 얻은 ‘자치 지위’를 넘어서 독립국가로 도약하는 것은 상당기간 힘들어 보인다.

뉴욕타임스는 11일 지도체제가 확고하게 정착되지 않는다면 팔레스타인 지도부가 내부의 권력투쟁을 겪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자치 정부를 중심으로 한 기성 정치권과 하마스, 이슬람 지하드 등 과격 무장 단체간의 ‘자중지란’이 벌어지면 대외 투쟁은 힘을 잃을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순조로운 권력 이양을 위해서는 자유선거를 통해 권력을 창출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지만 미국과 이스라엘은 강경지도자에 대한 거부 입장을 밝히는 등 벌써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발휘하고 있다.

▽중동 정세 전망=팔레스타인 문제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양자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복잡한 구조를 갖고 있다. 이스라엘의 뒤에는 미국이, 팔레스타인의 뒤에는 아랍권이 자리 잡고 있어 ‘대리전’ 양상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 최대 정파인 파타운동 총재로 지명된 파루크 카두미 전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정치국장이 11일 이스라엘과의 평화협상에 나설 용의가 있으나 협상이 실패할 경우 무장투쟁을 추구할 것이라며 강온양면성 발언을 한 것도 아랍권의 분위기를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하나의 변수는 집권 2기를 맞은 조지 W 부시 미 행정부의 대중동 정책이 어떻게 전개되느냐의 여부. 이라크전쟁에 이어 부시 대통령은 집권 2기에 중동질서 재편을 위한 ‘확대중동구상’을 본격화할 가능성이 높다. 이 구상은 중동에서 민주주의를 확산시켜 테러의 ‘숙주 국가’들을 없애겠다는 것. 팔레스타인 문제도 이 같은 틀에서 정리될 가능성이 있다.

다만 부시 대통령이 “팔레스타인의 책임 있는 지도부(responsible leadership)가 출범하면 평화 협상을 할 의향이 있다”고 말한 것은 긍정적 출발로 볼 수 있다.


김정안기자 cred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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