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인질극 대참사]누가 먼저 쐈을까?

  • 입력 2004년 9월 5일 18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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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먼저 쐈나?” 3일 오후 1시5분. 53시간의 팽팽한 대치를 깬 총성과 폭음은 사상 최악의 유혈 참사로 이어졌다. 러시아 수사당국은 5일 “총격전이 벌어지게 된 자세한 경위는 아직 밝히지 못했다”고 발표했다. 현지 전문가들은 당시 상황에 대해 3가지 가능성을 내놓고 있다.》

▽계획된 무력진압?=진압군이 먼저 작전에 들어갔다는 주장은 점차 설득력을 잃고 있다.

우선 러시아 당국이 완강히 부인하고 있다. 4일 사건 현장을 찾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무력 사용 계획은 없었다”고 말했다. “사건이 매우 빠르고 예측불허로 전개됐다”고 말해 통제 불능의 상황이었음을 시인했다.

수시간 동안 엄청난 희생자를 내면서 총격전이 계속될 정도로 작전이 허술했다는 점도 주목된다. 치밀하게 계획된 진압작전이었다면 특수부대가 전광석화처럼 투입됐어야 하는데 오히려 진압군은 상황을 예측하지 못한 듯 당황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어린이 인질의 피해를 무릅쓰고 모험을 하기에는 정치적 부담이 컸다는 정황이나 대낮에 작전에 들어가는 것은 비상식적이라는 점도 계획된 작전 가능성에 의문을 던진다.

▽우발적 상황인가=우연히 촉발된 상황이 엄청난 결과를 이어졌다는 주장이 갈수록 힘을 얻고 있다.

인질을 위협하기 위해, 혹은 인질범간의 내부 충돌이나 오발 등으로 총성이 울리자 놀란 인질들이 탈출을 시도했고 진압군도 학교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는 것이다.

당시 범인들은 곳곳에 부비트랩과 폭약을 설치한 상태였다. 일간 이즈베스티야는 “범인들이 인질을 위협하기 위해 쏜 총알이 폭약이 설치된 체육관 농구대에 맞으면서 지붕이 뚫릴 정도의 대형 폭발이 일어났다”고 전했다.

인질이나 진압병력 모두 3일 동안 계속된 대치상황에서 지치고 신경이 날카로워진 상태여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전개됐다는 분석이다.

▽인질범들의 탈출 시도?=일간 코메르산트는 인질범들이 고의로 총을 쏘고 폭발을 일으켜 혼란이 빚어진 후 이 틈에 탈출을 시도했을 가능성도 제기했다. 몇몇 인질범들은 변장을 하고 인질 사이에 끼어 탈출을 시도하기도 했다.

체첸반군은 1996년 러시아 남부의 병원에서 벌인 인질극 때에도 이 방식으로 탈출에 성공한 사례가 있다.

모스크바=김기현특파원 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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