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일씨 피살]네티즌 극단적 반응 폭주 ‘빗나간 분노’

  • 입력 2004년 6월 23일 18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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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청이 김선일씨 피살사건에 이은 추가 테러발생에 대비해 경계태세를 강화한 가운데 23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에서 경찰특공대가 순찰활동을 벌이고 있다.-이훈구기자
경찰청이 김선일씨 피살사건에 이은 추가 테러발생에 대비해 경계태세를 강화한 가운데 23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에서 경찰특공대가 순찰활동을 벌이고 있다.-이훈구기자
23일 오전 김선일씨 사망 소식이 알려지자 격분한 일부 시민과 네티즌들이 보복을 촉구하는 등 극단적으로 반응하자 이 같은 감정적 행동을 자제해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이날 오전 2시경 외교통상부가 김씨의 사망을 공식적으로 발표한 직후 국방부를 비롯한 정부 기관과 각 언론사에는 분노한 시민들의 전화가 끊이질 않았다.

국방부 관계자는 “전투병이라도 파병해서 ‘복수’해 달라는 전화가 많다”며 “감정적 전화에 일일이 대응할 수도 없어 난감하다”고 말했다.

일부 네티즌의 반응은 한계를 넘어섰다. 대형 포털사이트를 비롯해 정부기관, 언론사 홈페이지에는 ‘당장 이라크를 초토화시키자’(ID:sun2001s) ‘피의 보복으로 원수를 갚자’(ID:ielija)는 등 격한 글들이 수없이 쏟아지고 있다.

‘국내 이라크인들에게 복수의 테러를 가하자’는 매우 위험한 글들도 눈에 띈다. 일부 네티즌은 ‘아랍인 척살대’라는 섬뜩한 표현을 써가며 동조자를 모집한다는 글을 올려놓기도 했다.

알 자지라 방송 홈페이지 등 아랍권 인터넷 사이트들도 네티즌들의 주요 공격 대상이 되고 있다. 네티즌들은 이들 사이트를 폐쇄시키겠다며 집단적으로 글을 올려 일반인들은 접속하기조차 어려웠다.

여기에 김씨의 사망 장면 비디오를 공개적으로 구한다는 내용의 광고를 올린 미국의 한 엽기사이트도 국내 네티즌들의 표적이 되고 있다. 이 사이트는 지난번 미국인 참수장면을 띄웠으며 김씨가 숨지기 전부터 ‘김씨의 참수 비디오 언제 나올까’란 광고문안을 올려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에 대해 고려대 박길성(朴吉聲·사회학) 교수는 “분노의 심정은 이해하지만 이 같은 반응들은 사회적 통념을 무시하는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라며 “이럴수록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자세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씨가 다녔던 한국외국어대 아랍어과 박종평(朴鍾坪) 교수도 “폭력세력과 일반 이라크인들을 동일시해선 안 된다”며 “이는 갈등을 더욱 심각하게 만들 뿐”이라고 말했다.

정양환기자 ray@donga.com

▼국방부 홈페이지 한때 마비▼

이라크 무장단체에 납치됐던 김선일씨가 끝내 살해됐다는 비보를 접한 네티즌들은 23일 새벽부터 국방부, 육군, 특전사령부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거센 항의의 글을 올렸다.

특히 국방부 홈페이지(www.mnd.go.kr)는 하루 200∼500명 수준이던 접속자 수가 이날 1만명 가까이 급증하면서 오전 5시부터 3시간가량 일시 마비되기도 했다.

네티즌들은 주로 △이라크 파병 찬성 △파병부대의 전투병 증원 △무장단체에 대한 보복 등을 주장했다. 파병 반대 등의 주장은 조회수에서 거의 호응을 얻지 못했다.

‘분노한다’라는 이름의 네티즌은 국방부 홈페이지에 “나도 과거엔 파병 철회하자고 주장했고, 김씨를 살리기 위해 파병 철회를 했어야 했다고 생각한다”며 “하지만 아무 죄 없는 분을 무참히 살해한 그놈들을 용서할 수 없어 파병을 찬성한다”고 밝혔다.

특전사 홈페이지에 글을 올린 네티즌 ‘여정호’씨는 “도와준다고 재건부대를 보내줘 봤자 환영도 못 받으니 아예 재건부대를 철수하고 특전사 정예부대원들을 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네티즌 ‘대한건아’는 육군 홈페이지에서 “(김씨) 시신에 부비트랩(폭발물의 일종)까지 설치한 것은 한국 사람을 철저히 우롱하는 행위”라며 “그들이 반드시 후회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울분을 토했다.

반면 국방부는 신중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파병 전투병을 늘리거나, 무장단체에 직접 보복하려 들 경우 이라크인들의 반발과 추가 테러를 초래해 파병 장병들의 안전이 위협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파병 원칙을 바꾸는 것 자체가 테러단체의 의도에 휘말리는 것이므로 감정적 대응을 삼가야 한다는 것이 국방부의 입장이다. 최호원기자 bestig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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