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홍권희/‘브라운 재판’ 50주년

  • 입력 2004년 5월 19일 18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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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수십년 전 미국에서는 백인은 백인식당, 흑인은 흑인식당을 이용했다. 기차역 대합실도 따로 썼다. 건물 화장실엔 남녀구분에 앞서 흑백(Colored, White) 구분 표지가 더 크게 붙어 있었다. 물론 흑인용은 시설이 형편없었다. 1951년 켄터키주 토피카의 린다 브라운은 기찻길을 지나 1.6km 거리의 흑인초등학교 3학년에 다니고 있었다. 집에서 일곱 블록 떨어진 백인학교로 옮기고 싶었지만 교장에게 거절당하고 말았다.

▷린다의 부친 올리버 브라운은 유색인종 권익단체 NAACP의 도움으로 소송을 제기했다. 3년간의 ‘브라운 대(對) 토피카 교육위원회’ 재판에서 미 연방대법원은 ‘공립학교의 인종분리는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1954년 5월 17일이었다. ‘분리하되 평등한’ 공공시설을 허용했던 58년 전 대법원 결정을 뒤집은 판결이었다. 며칠 전 이 판결이 내려진 지 만 50년을 맞아 미국인들은 기념행사를 가졌다. 판결일을 기념일로 잡은 미국인들의 모습에서 법에 대한 존경심이 읽혀진다.

▷당시 인종차별에 대한 저항은 학교에 이어 버스, 식당 등으로 확대됐다. 1955년 12월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에서 42세의 흑인 여자재봉사 로자 파크스는 버스에 올라 백인용인 앞자리에 앉았다. 뒤쪽 흑인자리로 가라는 운전사의 재촉을 거부한 그녀는 유치장에 갇혔다. 분노한 흑인들은 승차거부에 들어갔고, 이 과정에서 마틴 루터 킹 목사가 흑인민권운동을 이끌게 된다. 1960년 노스캐롤라이나주 그린즈버러에서는 흑인대학생들이 백인전용 식당 이용을 요구하면서 연좌농성에 들어갔다.

▷일련의 민권운동을 반영해 인종, 피부색, 종교, 국적에 따른 차별을 철폐하는 내용의 민권법이 제정된 것은 1964년이었다. 차별의 현장이었던 토피카의 흑인전용 먼로초등학교는 국립공원이 됐다. 경찰이 파크스를 버스에서 끌어내린 길에는 ‘로자 파크스 애비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제는 차별이 해소된 걸까. 교육만 보더라도 가난한 흑인자녀의 교육에 정부가 돈을 덜 쓰는 ‘돈 문제’가 심각하다고 미국언론들은 지적한다. 아직도 흑인학생들이 학교에서 기회를 균등하게 누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홍권희 뉴욕특파원 koni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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