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가워, 남한 친구들 우리는 한 핏줄이래”

  • 입력 2004년 5월 4일 18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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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법인 ‘남북어린이어깨동무’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한 총련 어린이들이 4일 대전엑스포 북한관을 찾았다. 남한 어린이들과 함께 한반도 지도를 보고 있는 이들도 통일을 기원하는 마음일까.-대전=뉴시스
사단법인 ‘남북어린이어깨동무’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한 총련 어린이들이 4일 대전엑스포 북한관을 찾았다. 남한 어린이들과 함께 한반도 지도를 보고 있는 이들도 통일을 기원하는 마음일까.-대전=뉴시스
“도쿄조선 제6초급학교 6학년 조숭귀입니다. 나는 로봇 박사가 꿈입니다.”

3일 오후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언북초등학교 6학년 2반 교실.

촉촉이 비를 머금은 교정 사이로 “까르르” 웃음소리가 퍼졌다. 힘찬 박수를 치며 호기심에 고개를 내미는 아이들의 표정엔 반가움이 넘쳤다. 이날 학교엔 봄비와 함께 귀한 손님들이 방문했다.

박애실(13·여) 한유화(13·여) 이시홍양(12·여) 조숭귀군(12).

이들은 일본의 도쿄조선 제5초중급학교와 제6초급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들이다. 그리고 이들 중 한양과 조군은 일본에서 가장 극심한 차별대우를 받는다는 ‘조선적(朝鮮籍)’ 어린이. 박양과 이양은 한국 국적을 갖고 있다.

이들은 사단법인 ‘남북어린이어깨동무’의 초청으로 ‘2004 동북아시아 평화그림전’에 참가하기 위해 2일 일본인 어린이 4명과 함께 3박4일 일정으로 한국에 왔다. 부모 품을 떠난 첫 여행이라 긴장도 했지만 “말이 통하는 동포들이 많으니 너무 좋다”며 금방 싱그럽게 웃어보였다.

조선적 동포란 말 그대로 재일동포 중 일본에 귀화하거나 ‘대한민국’의 국적을 택하지 않고 광복 이전의 ‘조선’ 국적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이들. 120만명으로 추산되는 재일동포 중 조선적은 15만명 정도다.

아직 북한과 수교를 맺지 않은 일본엔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북한)’이란 국적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보니 ‘조선적=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친북동포단체)계’로 인식돼 온 게 사실. 그러나 일부는 ‘남과 북 모두 고국’이라는 생각에서 ‘난민’이나 다름없는 길을 택했다.

조선적의 이런 지위와 위상은 이번 여행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박양 이양과 일본인 어린이의 입국은 아무런 문제가 없었으나 한양과 조군은 외교통상부로부터 ‘임시여행증명서’를 발급받아야 했다. 서류 작성 및 절차가 까다로워 상당히 애를 먹었다.

이 때문에 “한국이 너무 맘에 든다”며 즐거워하던 한양은 “오는 데 너무 피곤한 일이 많아 다시 오기 두렵다”며 시무룩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맑았다. 매번 수줍어하며 고개를 젓던 한양과 친구들은 어느새 아이들과 친해져 카메라 앞에서 ‘V’자를 그려보였다. 감색 교복에 심각한 표정이던 조군도 식당에서 음식이 나오자 자기도 모르게 춤을 추어 모두를 배꼽 쥐게 만들었다.

특히 한일 양국 최고의 스타 가수 ‘보아’ 얘기를 할 땐 모두들 눈빛이 반짝였다. 3일 저녁 잠깐 들른 대형서점의 벽에 붙은 보아의 포스터는 국적을 불문하고 너나없이 서로 갖겠다는 통에 통제가 어려울 정도였다.

아이들을 인솔해 한국에 온 조선적 미술교사 성필려씨(49·여)는 “문화의 힘은 벽을 느끼던 아이들마저 하나로 연결시키는 것 같다”면서 “우리 아이들이 통일된 조국 국적을 가지고 당당하게 살 수 있는 날이 어서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로봇 인형을 사려던 용돈으로 어머니께 드릴 나전칠기를 고르던 조군은 “꼭 로봇 박사가 되어 통일된 고국에 다시 오겠다”고 거듭 다짐했다. 아이들은 어린이날인 5일 오전 한국을 떠난다. 이날은 마침 일본의 남자 어린이날인 ‘고도모노히’(여자 어린이날은 3월 3일 ‘히나마쓰리’).

양국의 어린이날에 이들 조선적 어린이는 한반도와 일본 열도의 상공에서 고국과 고향을 동시에 생각할 것이다.

정양환기자 ray@donga.com

전지성기자 vers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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