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문홍/‘일본版CIA’

  • 입력 2004년 3월 29일 18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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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대국 일본의 성공 비결을 얘기할 때 세지마 류조(瀨島龍三)를 빼놓을 수 없다. 1967년 중동전쟁이 6일 만에 끝나리라는 것을 정확하게 예견했고 1973년 오일쇼크가 터질 조짐을 미리 읽어 회사에 막대한 석유시세 차익을 안겨 줬다는 일본 종합상사의 산증인, 바로 그 사람이다. 제2차 세계대전 때 관동군 참모를 지내면서 갈고 닦은 정보 감각은 그에게 최대 자산이었다. 패전 후 11년을 소련군 포로로 허송세월했음에도 훗날 이토추(伊藤忠)상사의 회장 자리에 올랐고 ‘전무후무한 정보담당 임원(CIO)’이라는 칭송까지 얻었으니까.

▷일본은 미국의 중앙정보국(CIA)이나 우리의 국가정보원(NIS)과 같은 국가정보기구가 없는 나라다. 대신 내각에 정보조사실(내조실)이라는 ‘왜소한’ 기구를 운영한다. 일본처럼 큰 나라를 운영하려면 방대한 정보 수집 활동은 필수일 터인데 그 공백은 어떻게 메우느냐고? 답은 ‘세지마 와 같은 민간 기업인을 비롯해 외교관 언론인 등 다양한 부문에서 자발적으로 메워 준다’다. 일례로 미쓰이(三井)상사는 세계 185개 지역의 현지 사무소에서 수집하는 정보를 1957년부터 운영했다는 본사 중앙컴퓨터시스템에 축적한다. 이 중 상당한 정보가 내조실로 전달됨은 물론이다.

▷한마디로 민간과 정부가 유기적으로 협력하는 특이한 국가정보시스템이다. 미국이 제공하는 안보 우산 속에서 외국에서 수집하는 정보의 85∼90%를 경제정보로 채우는 것, 이것이 전후(戰後) 일본의 성공 전략이었다. 그런데 그런 정보시스템만으로는 부족함을 느낀 것일까? 내조실을 CIA와 유사한 정보기관으로 확대 개편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으니 말이다.

▷9·11 이후 테러 위협이 발등의 불이 됐으니 일본의 국가정보시스템도 사정에 따라 변신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가깝고도 먼’ 이웃인 우리는 아무래도 좀 찜찜하다. 그렇지 않아도 일본의 보수우경화니 재무장이니 말이 많은 터에 ‘세지마의 후예’들이 우리 땅을 제 집 안방처럼 들락거릴지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1994년에는 일본 모 TV의 서울 주재 언론인이 군사정보를 수집하다 강제 퇴거당한 일도 있었지 않은가.

송문홍 논설위원 songm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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