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철의 시대’…80년대, 무력한 지식인의 자화상

  • 입력 2004년 3월 5일 17시 40분


코멘트
남아프리카공화국 작가 존 쿠시. ‘철의 시대’는 흑과 백, 예스와 노 같은 이분법적 논리가 쇠와 쇠처럼 부딪치는 험한 시대를 가리키는 제목이다.동아일보 자료사진
남아프리카공화국 작가 존 쿠시. ‘철의 시대’는 흑과 백, 예스와 노 같은 이분법적 논리가 쇠와 쇠처럼 부딪치는 험한 시대를 가리키는 제목이다.동아일보 자료사진
◇철의 시대/존 쿠체 지음 왕은철 옮김/272쪽 1만원 들녘

지난해 노벨 문학상을 받은 존 쿠시(63)는 남아프리카공화국 고원지대 우스터에서 태어났다. 덥고 먼지가 분분해 동식물들이 거의 없는 박토다. 쿠시가 관념적 지식인이면서도 아주 짧은 문장들을 구사하는 것은 우스터처럼 무미건조한 환경이 주는 ‘아주 간략한 현실’과 관련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작품 도입부는 이렇다.

‘차고 아래쪽으로 골목길이 있지. 너도 기억할 게다. 네가 친구들과 함께 거기서 가끔 놀곤 했지. 이제 그곳은 죽은 곳이다.’

나이든 교수인 여주인공 엘리자베스 커런이 남아공의 흑백분쟁에 넌덜머리를 내고 미국으로 이주해버린 딸에게 쓴 편지 구절이다. 그녀는 백인정권이 흑백 차별정책을 밀어붙이며 계엄을 선포한 1986년에 긴 편지를 쓰기 시작한다. 분쟁 속에서 평생을 보낸 커런은 이 무렵 암 선고를 받는데 남아공 자체도 암 환자가 된 것 같다.

흑인 소년들까지 시위에 나서자 커런의 흑인 가정부 플로렌스는 자기 아들 베키와 아들 친구를 커런의 집으로 데려온다. 두 아이가 사라지자 커런은 흑인 거주지를 샅샅이 뒤지게 되는데 고전문학에 익숙한 그녀는 이때 마치 시인 단테가 둘러본 ‘신곡’의 지하 세계 속에 와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결국 베키는 죽은 채 발견되고, 베키의 친구 역시 커런의 집에 숨어들었다가 백인 경찰들에게 살해된다.

커런은 절망적인 자기 편지를 자기가 죽고 나서야 딸에게 보내달라며 부랑자인 퍼케일에게 맡긴다.

퍼케일은 고립감에 빠진 커런에게 말을 붙여주고 간간이 도와주기는 한다. 하지만 아무래도 ‘남아공이라는 지옥’에 내려와 있는 무력한 구세주의 현실처럼 읽힌다.

‘이 슬픔의 급류 옆에서 너무나도 평온히 잠을 자는 퍼케일과 그의 개. …나는 주민증에 있는 그의 사진을 본 적이 있다. 흐릿한 모습으로만 사진에 나타나는, 반쯤 신화적인 존재처럼 보인다. 인간일 수도 있고, 짐승일 수도 있고….’

위안을 얻을 길 없는 커런에게 삶은 완벽한 절망이다. ‘삶이란 발가락 사이에 낀 때다. …이빨 사이에 낀 때다. …물에 빠지는 것이다.’

커런은 미국에 정착한 딸을 생각하면 잠시 낙관적이 되는 것 같다. ‘만약 네가 이 말들을 읽게 되면 이 말들이 네 안에 들어가서 새로이 숨 쉬게 될 것이다. …옛날에는 네가 내 몸 속에 살았었다. …나도 네 안에 살아 있으면 싶다.’

쿠시는 조국의 흑백분쟁을 자주 다뤘으면서도 투사보다는 자기와 같은 교수들을 자주 등장시켰다. 쿠시는 ‘거짓 영웅을 소설화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솔직한 작가’라는 평을 받고 있다.

그가 영웅 대신 내놓는 존재는 분노하면서도 자학하는 무력한 지식인이다. 마치 한국의 80년대 지식인을 ‘80년대 남아공’이라는 무대 세트 속에 놓아둔 것 같다. 그래서 이 소설은 어둡고 지루한 ‘후일담 문학의 남아공 버전’ 같다.

권기태기자 kkt@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