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자위대 50년]<5·끝>戰死 발생땐 ‘평화헌법’ 굴레 벗어버릴듯

  • 입력 2004년 2월 6일 18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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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미래는 이라크 파병에 달려 있다.”

자위대 본대가 이라크로 떠나던 날 일본의 한 정치평론가는 이렇게 단언했다.

이라크 파병은 단순히 자위대원 1000명의 장거리 이동을 의미하지 않는다. 제2차 세계대전 후 ‘평화헌법’ 테두리에서 지내온 일본이 커다란 전환기를 맞고 있음을 상징한다.

이라크 파병 자위대원 중 사상자가 생기면 일본은 ‘전후 최초의 전사자’에 충격을 받을 것이다. 여론에 휘말려 총리가 책임을 지고 퇴진하는 일도 벌어질 수 있다.

자위대를 ‘군대 아닌 군대’로 방치할 수는 없다는 개헌 세력이 목소리를 높이면서 헌법 수호론자의 입지는 더욱 좁아지고 있다.

아시아 대륙을 침략했던 제국주의 역사와 단절을 선언하는 뜻에서 무력행사 금지와 군대 보유 금지를 선언한 평화헌법을 개정하는 것은 자위대의 미래, 일본의 미래뿐 아니라 동북아 질서와도 직결되기에 초미의 관심사다.

▽위험 각오한 파병=국회에서 이라크 파병 승인이 나기 훨씬 전인 지난해 하반기부터 자위대는 내부적으로 파병 지원자를 모집했다.

파병 인력의 몇 배나 지원자가 몰리자 1, 2차로 순서를 정했다. 위험한 곳이긴 하지만 국익을 지킨다는 사명감, 직업군인으로서 진급에 필요한 실전 경험, 두둑한 수입 등을 고려한 지원자들이었다.

파병대원이 받는 수당은 하루 2만4000엔(약 24만원). 여기에 월급을 더하면 3개월 파병기간 중 300만엔(약 3000만원)을 받는다. 대졸 신임 소위의 연봉이 400만엔임을 감안하면 큰 돈.

하지만 파병지역인 이라크 남부 사마와 일대 상황은 안심할 수 없다. 이라크인은 부자 나라 일본이 점령국의 동맹군으로 중무장 부대를 보내는데 반감을 갖고 있다. 테러 위협도 고조되고 있다.

자위대원들은 영하 20도의 홋카이도(北海道)로부터 한낮에 최고 영상 40도가 넘는 지역으로 급작스레 이동해 기후와의 싸움도 벌여야 한다.

▽정국 파란 예고=파병대원 중 사상자가 생기면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 경질론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강조하며 반대 여론을 누르고 파병을 강행한 고이즈미 총리의 독주에 불만을 품은 자민당 내 반대 세력, 어쩔 수 없이 파병에 동의한 연립여당 공명당, 제1야당 민주당이 동상이몽의 제휴를 하면 총리 경질까지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일본 사회에 정통한 원로 사회운동가는 “사상자가 발생해도 자위대는 철수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본 정부와 여권은 ‘일본인의 죽음을 헛되이 할 것인가’ 식의 국수주의 홍보 전략을 통해 무장 강화 혹은 증파로 위기 국면을 뚫을 것이란 분석이다. ‘일본의 위신이 걸린 전쟁’ ‘파병한 이상 물러설 수 없다’는 선전을 강화하면 일본인들은 과거 역사에서 그랬던 것처럼 현실을 인정할 것이라는 것이다.

▽개헌론 가속 전망=‘평화헌법’은 사실상의 전투지역인 이라크에 자위대를 파병함으로써 무력화되는 셈이다. 군대 보유를 금지한 헌법에도 불구하고 막강 전력의 ‘군대 아닌 군대’를 보유하게 된 것은 미국의 전략 변화에 힘입은 것이었다. 이에 따라 경제대국의 기반이 된 평화헌법은 북핵 위기와 이라크 전쟁을 핑계로 마침내 용도 폐기될 운명을 맞았다.

주변국의 우려는 우려일 뿐, 일본 내 견제 세력이 거의 없다는 점도 평화헌법의 장래를 어둡게 한다.

전쟁의 참상을 모르는 전후세대 정치인의 대거 등장으로 일본 의회 분위기는 개헌에 관한 한 여야 없이 ‘개헌은 필수’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일본의 진정한 독립은 미국이 강요한 헌법 철폐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여론도 형성되고 있다.

이라크 파병을 계기로 일본은 2차대전 패전국으로 걸머졌던 ‘평화헌법’이라는 굴레를 벗어던지는 첫 걸음을 뗐다.

도쿄=조헌주특파원 hanscho@donga.com

박원재특파원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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