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토 요스케 박사 '독도 우표' 관련 기고문 전문

  • 입력 2004년 1월 9일 16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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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토 요스케' 박사 논설 전문▼

'한국은 타케시마의 우표를 발행할까?'

매년 이 시기가 되면, 내년도의 계획이 하나둘씩 화제가 되기 시작한다. 이는 우표나 우편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로, 여러나라에서 벌써 2004년의 우표 발행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이러한 각국의 내년도 우표 발행계획을 바라보고 있던 참에 한국이 내년 1월 16일에 독도(일본명 타케시마-본고에서는 원칙으로서 일본명인 '타케시마'라고 표기한다) 우표를 발행한다는 정보가 눈에 들어왔다.

●50년전에도 있던 타케시마 우표 소동

타케시마는 시마네현 오키섬의 북서 약 157 km의 지점에 있으며 2개의 주섬과 10여개의 암초로 구성돼 있다. 총면적은 230,967평방 미터로 도쿄 돔의 약 5배이며, 주변은 풍부한 어장으로서 알려져 있어 일본과 한국의 사이에 그 귀속을 둘러싸고 대립이 계속되고 있다.

타케시마의 영유권을 둘러싼 일한의 대립은 1952년 1월 한국의 '인접 해양의 주권에 관한 대통령 선언'이 그 발단이 됐다. 이 선언은 어업 자원의 보전을 이유로 1945년 9월 미국 극동군 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가 한국 앞바다에 설정한 '맥아더 라인'보다 일본에 가깝게 '평화선'(일본측에서는 한국 대통령의 이름을 붙여 '이승만 라인'이라고 불렀다)을 설정해, 이 라인 이내의 모든 천연자원, 수산물의 이용권을 주장한 것이었다.

당시 한국은 1946년에 연합국 총사령부(GHQ)가 발행한 '외곽 지역 분리 각서'에 타케시마를 일본의 행정구역으로부터 분리하는 취지의 내용이 있다는 것을 근거로 '이승만 라인'의 안쪽에 타케시마를 포함해 그 영유권이 한국에 있다고 주장했다.

이로 인해 메이지 이후, 제2차 대전의 종결까지 일관되게 타케시마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던 일본측은 당연히 맹비난했으며, 1952년 2월부터 국교정상화 교섭(1차회담) 등이 무기한 연기됐다.

그 후, 일한교섭(2차회담)은 한국 전쟁 말기의 1953년 4월에 간신히 재개 되었지만, 동년 10월 제3차 회담에서 일본측 대표가 "일본이 조선에 가지 않았으면 중국이나 러시아가 들어가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발언을 해 회담은 결렬되고, 이후 국교 정상화 교섭은 1958년 4월까지 중단되어 버렸다.

일한 양국의 대립을 염려한 미국 대통령 아이젠하우어는 1954년 7월, 한국에 대해 이승만 라인의 철회 등 일본에 대한 유화정책을 요구했지만, 이것은 역효과로 나타나 한국은 미국의 교섭까지도 결렬시키면서 8월 대일 경제단교 조치를 발동해 버린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1954년 9월, 한국은 타케시마의 영유권과 이승만 라인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 타케시마가 그려진 우표를 발행했다.

당시 일본측은 타케시마 우표가 붙여진 우편물을 한국에 반송하는 것으로 대항했지만, 실제로 방대한 우편물 중에서 타케시마 우표가 붙여진 것만을 반송한다는 것은 사실상 극히 곤란했다.

따라서 문제의 우표가 붙여진 채로 일본 국내에서 배달된 우편물의 수도 적지 않다.

그 후 현재까지, 일본은 타케시마의 영유권을 계속 주장하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한국이 경비대를 상주시켜 실효 지배를 강화하고 있다.

이번에 발행될 우표 역시, 한국은 타케시마가 자국의 정당한 영토인 것을 국내외에 분명히 하는 의도를 가지고 계획된 것이다.

또 그 배경에는 대통령 취임 1년만에 레임덕 현상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되는 노무현 정권이 영토문제를 통해 구심력을 회복하려는 의도가 있을지도 모른다.

왜 2004년 1월이라는 시기에 이 우표가 발행되는 것인지, 그 진짜 이유는 아직 모른다.

●원폭 우표의 교훈은 활용되는 것인가

이번 타케시마 우표가 당초의 계획대로 발행된다면 일본과 한국사이의 정치 문제화는 피할 수가 없다.

우표의 디자인이 정치 문제가 된 사례로서는 1994년말 미국이 다음해 9월에 발행을 예정하고 있던 '제2차 대전 50년'의 기념 우표가 있다.

원폭의 버섯구름을 그리고 "원폭 투하가 전쟁 종결을 앞당겼다"라는 문장을 넣은 이 우표가 일·미간에서 정치 문제화된 사건이다.

결국 미국은 일본측의 항의에 의해 우표의 발행을 철회했다.그렇지만 그 사이 일본 정부의 대응은 한마디로 추태에 지나지 않았다.

즉, '제2차 대전 50년 기념 우표'는 일본의 진주만 공격 50주년인 1991년부터 매년 1회씩 발행되고 있었던 것으로, 종래 미국의 역사관을 살펴보면 1995년에 미국측이 '원폭 우표'를 발행하는 것이라고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는 '겨우 우표'라고 얕잡아봤기 때문인지, 사전에 아무런 대책을 강구하지 않고(예를 들어 "인류 사상최초의 핵병기의 사용" 등으로 문구를 고치도록 요구하는 것은 가능했을 것이다) 미국측의 보도를 듣고 우표 발행을 중지하도록 간절히 원하는 상태였다.

이 문제에 관해서 당시의 일본 정부 고관들은 오로지 "유감스럽다"를 반복할 뿐, 원폭 투하가 "종전을 앞당긴 인도적" 물건이 아니라는 역사적 사실과 미국의 자세를 냉정하게 비판하는 행동을 전혀 취하지 않았다.

그 결과, 미국은 "원폭 투하가 전쟁 종결을 앞당겼다"라는 종래의 주장을 철회하는 일 없이, 일본과의 우호 관계를 고려해 우표의 발행을 중단했으며, 일본 정부는 미국측의 호의에 감사했다고 한다.

이번 타케시마 우표에 관해서도, 한 때 '원폭 우표'와 같이 일본 정부는 발행 직전에 당황해서 우표 발행의 중지를 요구하는 것을 반복할 것인가?

타케시마는 일본의 영토이다고 주장한다면, 우표 발행까지 시간적 여유가 있는 지금, 이번 계획에 대해 공식적으로 "불쾌감"을 나타내서는 안될까?

물론, 정부까지도 타케시마가 한국의 영토라는 것을 인정해버리고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지지만…….

이런 종류의 문제는 매우 민감한 것이므로 우리 국민이 모르는 곳에서 절충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재까지 한국측이 타케시마 우표 발행 계획을 철회했다는 정보는 전해지지 않는다.

덧붙여서, 어제(11월 12일), 본고 집필을 위해서 필자가 주일 한국 대사관에 전화로 문의했는데, "지금까지 이 문제에 관해서 어떠한 일본인의 문의도 없었다"고 대답을 들었다.

만약, 이대로 진행된다면 이번 또한 '원폭 우표'때와 같은 허둥지둥하는 모습을 우리 국민은 보게 될 것 같다.

도쿄대학 대학원 인문 사회계 연구과 나이토 요스케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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