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칸반도, 극우망령 부활조짐…개혁정책 중단 우려

  • 입력 2003년 11월 26일 18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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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중반 인종청소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유럽의 ‘화약고’ 발칸반도에 극우 민족주의가 부활하고 있다.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25일 ‘과거로부터 온 유령’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발칸반도의 극우 민족주의 재부상을 우려했다.

2000년 극우 민족주의의 상징적 인물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전 세르비아 대통령의 퇴진과 함께 개혁세력이 등장하면서 발칸반도에 민주주의와 평화가 뿌리내릴 것이라는 기대가 컸지만 최근의 움직임은 과거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

▽극우 민족주의의 약진=옛 유고연방에 속해 있던 5개 국가 가운데 극우 민족주의 세력이 득세하고 있는 나라는 보스니아,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3개국이다.

크로아티아에서는 23일 총선에서 이보 사다네르가 이끄는 크로아티아민주동맹(HDZ) 등 급진 민족주의 계열이 집권 사회민주당(SDP)을 누르고 승리했다. 전체 의석(140석)의 과반수인 78석을 차지해 새 정부 구성에 필요한 요건을 충족했다.

세르비아에서도 16일 대선에서 민족주의 계열 세르비아 급진당(SRP)의 토미슬라프 니콜릭 후보가 최다 득표를 했다. 비록 유효투표율 50%에 못 미쳐 대통령에 당선되지는 못했지만 다음 선거에서 당선이 유력하다. 다음달 28일로 예정된 총선에서도 민족주의 계열의 압도적인 승리가 점쳐지고 있다.

보스니아도 지난해 10월 총선에서 11년 전 내전을 촉발했던 강경 민족주의 계열의 민주행동당(SDA), 세르비아 민주당(SDS), HDZ가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면서 2년간 개혁성향 군소 정당들과 함께 집권했던 SDP를 누르고 승리했다.

▽개혁세력에 대한 실망=극우 민족주의 세력의 부상에 대해 전문가들은 개혁성향의 집권세력에 대한 실망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특히 보스니아와 크로아티아는 집권세력이 경제를 살려내지 못해 유권자들이 등을 돌리게 됐다. 또 중도 성향의 유권자들은 개혁을 추진하는 정부가 정치권과 범죄집단의 고리를 끊지 못한 것에 대해서도 실망하고 있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전했다.

세르비아 정부가 과거 대중적 지지를 받아온 장군 4명을 전범 재판소에 기소한 것에 대해서도 개혁성향 집권세력의 전술적 실책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과거와의 결별도 좋지만 단기적으로는 국민의 지지를 얻기 위해 재고할 여지가 있었다는 것.

▽서방 국가들의 우려=급진 민족주의 세력이 득세하면 유럽연합(EU) 편입에 필요한 개혁이 중단될 것으로 서방국가들은 우려하고 있다. 옛 유고연방국 가운데 슬로베니아만 내년에 EU에 편입될 예정이다.

이에 따라 보스니아에서는 이미 외국인 투자가 줄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외교소식통에 따르면 몇몇 EU 국가들은 크로아티아의 사나데르 HDZ 대표에게 급진 민족주의 계열의 권리당(HSP)과 연대하는 대신 중도 성향의 농민당(PP)과 손잡으라고 압력을 넣고 있다.

민족주의 계열 인사들은 “우리는 과거와는 다르다”며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지만 회의적인 시각이 지배적이라고 이코노미스트는 전했다.

김성규기자 kim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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