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72년 닉슨 대통령 재선

  • 입력 2003년 11월 6일 18시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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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슨의 비밀’을 푸는 키워드는 케네디와 베트남전이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누가 죽였는가. 미국은 왜 베트남전에 달려들었는가.

그것은 판도라의 상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올리버 스톤 감독의 영화 ‘JFK’와 ‘닉슨’은 깊숙이 손을 집어넣는다.

리처드 닉슨은 케네디 없이는 이해될 수 없는 인물이다. 그는 1960년 대선에서 케네디에게 패한 뒤 캘리포니아 주지사선거에서도 고배를 마시자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그는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여러분은 더 이상 나를 발로 걷어찰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이 마지막 회견이다.”

그런데 왜 돌아왔을까. 영화에서는 CIA와 FBI, 펜타곤, 군수산업체의 실력자들이 닉슨의 주변을 배회한다. 그들은 다음 대선에 출마할 뜻이 없느냐고 넌지시 떠본다. 닉슨이 “다음에도 케네디가 대통령”이라고 자르자 고개를 가로젓는다. “다시 케네디가 출마하는 일은 없을 거야.” 그리고 케네디는 암살된다.

케네디가 죽자마자 베트남전은 공식화됐으며, 닉슨은 베트남전을 확전으로 내몰았다.

그는 평생 ‘케네디 콤플렉스’에 시달렸다.

어렵게 대학을 나와 자수성가한 닉슨은 케네디의 배경을 질시했다. 그는 존 미첼 법무장관에게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이봐, 존. 난 ‘넘버 원’ 법대를 다니지 못했어. 그게 날 항상 끌어내려. 당신 주변엔 하버드대 출신들이 많지?”

1972년 11월 7일. 닉슨은 압도적인 표차로 재선에 성공함으로써 정치생활의 정점을 맞는다. 그러나 이때 이미 워터게이트의 악몽은 시작되고 있었다.

닉슨의 병(病)은 과도한 권력에의 의지였다.

대통령학의 세계적 권위자인 프레드 그린슈타인은 이렇게 설명한다. “닉슨은 백악관에 들어가자마자 혼란에 빠졌다. 그는 자신이 권력을 쥐었다고 믿는 바로 그 순간, 손에 움켜쥔 모래처럼 쉴 새 없이 권력이 빠져나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백악관은 그런 곳이다. 그곳의 주인은 대통령이 아니라 ‘대통령을 만든’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이기우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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