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軍 심상찮다…“인구밀집지역 공격 거부”

  • 입력 2003년 9월 25일 18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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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을 실질적으로 좌지우지해온 이스라엘 군대에 이상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일부에서는 혁신적인 변화의 조짐이라고 해석할 정도이다.

최근 3년간 팔레스타인과의 유혈 분쟁에 앞장서면서 쌓인 내부 갈등이 표출되고 있는 것.

▽군인들의 반발 움직임=이스라엘 공군 조종사 27명이 팔레스타인 공격 명령에 조직적으로 불복종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조종사들은 24일 발표한 공개 탄원서에서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인구밀집 지역에 대한 표적 공습은 물론, 이 지역에 육군을 실어 나르는 임무도 거부했다. 민간인 희생을 불사하는 ‘비도덕적인’ 명령에는 따를 수 없다는 것이 항명 이유.

최근 3년 동안 이스라엘의 서안지구 점령이 불법이라고 주장하며 군 복무 대신 감옥행을 택한 이스라엘 군인은 모두 500여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항명 군인 중 일부는 전투지역을 벗어나 복무하도록 조치되기도 했다.

그러나 군 내에서 엘리트 그룹으로 꼽히며 사회적 지위도 높은 공군 조종사들이 공개적으로 집단 항명하는 사태는 이번이 처음이다. AP통신은 팔레스타인과의 유혈 분쟁이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 이 지역에서의 군복무를 거부하는 그동안의 미미한 움직임에 힘을 실어 주게 됐다고 평가했다.

단 할루츠 참모총장은 “우리 군대는 인간적이고 도덕적”이라면서 “명령을 거부하는 조종사들을 의법 처리할 것”이라고 경고했지만 사태 진화에 부심하고 있다.

▽징집제도 포기 가능성=가중되는 경제적 부담도 이스라엘 군의 변화를 재촉하고 있다.

AP통신은 이스라엘군 자문위원회가 국민개병제인 현 징집제도를 폐지하고 전투와 관련된 군인 모집으로 제한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냈다고 25일 보도했다. 군의 경제적 부담을 줄이기 위해 비군사적 기능은 민간으로 과감히 전환해야 한다는 취지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과의 유혈 분쟁으로 군사력 수요가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극심한 경기 침체로 최근 국방비를 삭감해왔다.

▽변화의 배경=이스라엘에서 군대는 국방뿐 아니라 100여개국 출신의 이민자들로 구성된 사회를 융합하는 용광로 역할을 해왔다. 군 복무 기간에 상당수 여군들은 고유 언어인 히브리어 소통에 문제가 있는 이민자들을 교육하거나 외지 교사로 복무한다.

그러나 극심한 불황에 2000년 말부터 악화돼온 팔레스타인과의 유혈 분쟁으로 군은 안팎에서 변화의 압력을 받고 있다. 시리아, 이란과 함께 가장 큰 위협이었던 이라크가 미국에 점령됐기 때문에 전투부대를 축소할 수 있다는 여론도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정부 정책에 실질적인 힘을 행사하고 있는 군 지도부는 이에 부정적이었다.

야당 소속 요시 사리드 의원은 “징집 축소 계획이 군대를 오히려 더욱 특권집단으로 만들 수 있다”고 우려하면서 “현행 징병제도를 최소한도만 민간으로 전환해 ‘국민의 군대’라는 인식을 와해시키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혜윤기자 parkhy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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