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사무소 테러 왜?]평화군 견제 - 이라크 재건 방해 노려

  • 입력 2003년 8월 20일 19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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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주도하는 ‘이라크 재건’ 작업이 테러조직의 전면 도전을 받고 있다. 바그다드 주재 유엔사무소 피격은 국제 평화유지 활동을 견제하고 미국의 이라크 질서유지 능력에 대한 불신감을 확산시키려는 시도로 분석된다.

▽왜 유엔인가=이번 테러는 유엔 창설 이후 최악의 피격으로 기록된다. 사망한 세르지우 비에이라 데멜루 유엔 특별대사가 테러의 목표였는지는 불확실하지만 유엔 고위관료가 살해된 것은 1948년 예루살렘에서 급진 유대교도에게 유엔조정관이 암살된 뒤 처음이다.

BBC방송 등 외신은 이달 14일 유엔안전보장이사회가 이라크 과도정부를 승인하고 이라크지원단을 발족시킨 것과 이번 사건을 연결시키고 있다.

이 조치로 이라크 저항세력이 유엔을 미영 연합군의 이라크 점령에 정당성을 불어넣어주는 ‘도구’로 생각하게 됐다는 것이다.

▽누구 소행인가=폭탄을 가득 실은 차량을 돌진시키는 자살공격은 헤즈볼라 등 중동지역 이슬람 테러단체들이 이스라엘을 상대로 써온 전형적인 테러유형이다.

그러나 뉴욕 타임스는 20일 미 국방부 관리들을 인용, “사담 후세인의 비밀경찰도 비슷한 테러유형을 여러차례 훈련받았다”고 전했다. 실제로 1993년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이 쿠웨이트를 시찰할 때 바그다드 비밀조직이 차량폭탄 테러를 기획한 적이 있다.

이라크 북부지역에서 암약하는 이슬람조직 ‘안사르 알 이슬람’도 용의선상에 올라있다. 이슬람 근본주의를 신봉하는 이 단체는 9·11테러를 저지른 알 카에다와 연계하고 이슬람전사들을 규합해 테러를 저질러왔다. 미군 소식통은 이란으로 도피했던 안사르 알 이슬람의 조직원들이 최근 속속 귀국, 조직원이 150여명으로 불어났다고 경고해왔다.

▽‘혼란에 빠뜨려라’=5월 1일 종전 선언 뒤 이라크 내 테러는 주로 미군과 미군시설에 집중됐다. 그러나 이달 들어 테러 목표는 요르단 대사관(7일) 송유관(15, 17일) 교도소(16일) 상수관(17일) 유엔본부(19일) 등으로 확대됐다. 이라크 내 저항이 후세인 잔당세력의 차원을 넘어 이슬람권의 지하드(성전) 성격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징후다.

어떤 테러단체가 저질렀는지 증거조차 없다. 그러나 공격목표가 한결같이 이라크 재건작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점에서 이라크를 혼돈에 빠뜨리려는 의도가 읽혀진다.

뉴욕타임스는 이 같은 테러범들의 전략을 ‘혼란조성전략’이라고 지적하고 이라크경제와 정정(政情)이 어지러울수록 미군에 대한 적대감이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라크, 제2의 아프가니스탄 되나=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테러범들이 이라크의 미래를 결정하지 못한다”고 단언했다. 미군의 대테러작전이 더욱 강경해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미국의 집요한 요청으로 각국이 준비해온 이라크 평화유지 활동은 지장을 받을 것이 분명해졌다. 인도 등 각국은 유엔 결의 없이 미국의 요청만으로는 평화유지군을 파병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이번 테러공격으로 관망 국가들은 더욱 파병을 머뭇거릴 것으로 보인다.

미군이 이라크 내 테러를 잠재우지 못하면 이라크가 ‘제2의 아프가니스탄’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미국의 첫 번째 ‘테러와의 전쟁국’이었던 아프가니스탄은 탈레반 정권이 축출됐지만 지난 한 주 동안 90여명이 살해되는 등 최악의 치안부재 상태에 빠져 있다. 이라크 역시 대량살상무기의 존재를 입증하지 못한 채 만신창이 상태가 이어진다면 미국의 승전선언은 갈수록 빛이 바랠 것으로 보인다.

박래정기자 eco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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