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폐한 古城에 ‘음악의 꽃’…佛사드 후작의 본거지 극장 개조

  • 입력 2003년 8월 5일 17시 4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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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세기 가까이 방치된 뒤 음악축제 현장으로 부활한 ‘사드 후작의 성’ 라코스테성. 겉모습을 그대로 둔채 객석과 무대를 설치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2세기 가까이 방치된 뒤 음악축제 현장으로 부활한 ‘사드 후작의 성’ 라코스테성. 겉모습을 그대로 둔채 객석과 무대를 설치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성도착(性倒錯)의 상징으로 불리는 사드 후작(Marquis de Sade·1740∼1814)의 옛 성이 음악축제의 본거지로 탈바꿈했다. 최근까지도 폐허와 다름없었던 ‘사드의 성’의 변신에는 세계 패션산업계 리더 중 하나인 피에르 카르댕(80)이 결정적인 역할을 해 더욱 눈길을 끈다.

사드는 남프랑스 귀족 가문의 자제로 태어나 ‘쥐스틴, 또는 미덕의 불행’ ‘규방철학’ 등의 작품을 남긴 소설가. 폭행사건에 연루되거나 반혁명 혐의를 받는 등 잦은 투옥 생활을 했으며 마침내 정신병원에서 일생을 마쳤다.

투옥 중에도 정력적으로 집필 활동을 했지만 그의 소설은 오늘날 ‘사디즘’으로 불리는 가학성(加虐性) 성도착 등 변태적 성향을 주로 다뤄 당대 사회에서 금기시됐다. 그의 사후 90년이 지나 발간된 ‘소돔에서의 120일’은 ‘성도착의 백과사전’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디자이너 피에르 카르댕이 라코스테성의 수리 계획을 발표한 뒤 남아있는 성 외벽을 살펴보고 있다.

프로방스 지방의 라코스테에 자리 잡은 ‘사드의 성’은 사드가 유년기를 보냈고 성장한 뒤에도 한때 유폐 생활을 한 곳. 12세기에 세워져 낡을 대로 낡은 데다 사드가 금기인물이 된 뒤에는 ‘악마가 씌었다’는 이유로 관리를 등한시해 최근에는 일부 벽면만 보존된 채 폐허로 남아있었다. 이따금 팀을 이뤄 들르는 관광객을 상대로 가이드가 ‘사드 후작의 채찍과 신음소리가 들리지 않습니까…’라는 자극적인 소개말을 읊는 것만이 폐허의 정적을 깼다.

이 잊혀진 장소를 다시 살아 숨쉬게 만든 인물이 바로 1990년대에 이곳을 사들인 피에르 카르댕. 그는 폐허가 된 성의 외관을 그대로 둔 채 바닥에 무대와 청중석을 만들어 음악축제 장소로 활용하기로 결심했다.

“시인 아폴리네르가 ‘그는 가장 자유로웠던 영혼’이라고 한 것처럼 사드는 뛰어난 심미안을 가진 자유인이었다. 자신의 옛집에 아름다운 선율이 울리는 것을 보면 그도 기뻐할 것이다.”

약 1년간의 공사 끝에 1000석의 극장이 마련됐고, 지난해 처음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조반니’가 공연됐다. 사드의 이미지에 호색한인 주인공 돈 조반니(돈 후안)의 모습을 겹쳐 부각시킨 공연은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고, 2회째를 맞은 올해는 7월 13일부터 8월 7일까지 10여개의 프로그램을 무대에 올리는 본격 대형 음악축제가 됐다. 이 축제는 인근 프로방스 지역의 오랑주 야외오페라 축제, 엑스앙프로방스 음악축제와 함께 ‘프로방스 음악축제 3부작’이라는 별명을 얻게 됐다. 종합예술축제인 아비뇽 페스티벌을 더해 프랑스의 ‘예술축제 벨트’로 불려온 프로방스 지방의 위상이 한층 강화된 것은 물론.

올해 개막작품은 모차르트 ‘피가로의 결혼’으로 역시 난봉꾼의 행각을 풍자하는 오페라. 7월 23일에는 미국의 스타 소프라노 르네 플레밍의 초청 독창회가 열렸다. 플레밍은 모차르트의 성가곡과 마스네 칠레아 등의 오페라를 열창해 박수갈채를 받았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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