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고 먼 '유럽 독자 방위'…佛 獨 등 4개국 국방비 부담 꺼려

  • 입력 2003년 4월 30일 18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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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과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총리, 기 베르호프스타트 벨기에 총리, 장클로드 융커 룩셈부르크 총리 등 유럽 4개국 정상은 지난달 29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른바 ‘유럽연합(EU) 미니 방위 정상회담’.

이라크전쟁에 반대했던 이들 4개국 정상의 합의 내용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유럽 방위를 독자적으로 추진할 유럽안보방위연합(ESDU) 창설이다.

ESDU는 기존 유럽 방위의 근간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는 다른 별도의 군사동맹체. 미국의 압도적 영향력 아래 있는 NATO에서 벗어나 유럽 방위의 ‘홀로서기’를 하겠다는 뜻이다.

정상들은 이를 위해 2004년까지 유럽의 독자 작전 수행을 위한 유럽군사령부의 창설 등도 제안했다. 4개국 정상은 이 같은 독자 방위 구상에 더 많은 유럽국가의 동참을 유도하기로 했다.

이라크전 반대로 미국의 보복 위협에 시달리는 4개국이 유럽의 독자 방위를 주장한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문제는 실현 가능성. 이라크전에 참전한 영국과 스페인은 물론 그리스 스페인 이탈리아 네덜란드 등 다른 유럽 국가들은 이번 정상회담을 “또 다른 분열 책동” “NATO 위에 옥상옥(屋上屋)을 짓는 것”이라고 비난해왔다.

회담에 참여한 정상들마저도 성명을 통해 “대서양 양안의 협력관계는 유럽의 중요한 우선 전략”이라며 미국 눈치를 봤다.

2001년 벨기에 라켄에서 열린 EU 정상회의 때부터 독자 방위는 유럽의 숙제였다. 하지만 언제나 돈이 문제였다. 입으로는 독자 방위를 외치면서도 막상 주머니를 열기는 꺼리는 게 유럽의 현실.

회담에 참여한 프랑스는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의 2.5%를 국방예산에 배정해 유럽 평균인 GDP의 1.9%를 웃돌았다.

그러나 독일(1.5%) 벨기에(1.3%) 룩셈부르크(0.9%) 등은 유럽 평균에도 못 미친다.

미국은 한 해 GDP의 3%인 3500억달러(약 437조5000억원)를 쏟아부으며 EU 15개 회원국 국방비의 3배, 미국을 제외한 NATO 18개 회원국 국방비의 2배를 쓴다. 그만큼 유럽 방위의 ‘홀로서기’는 요원할 수밖에 없다.

파리=박제균특파원 ph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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