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바그다드]밤엔 아직도 총성…美軍 "호텔 밖은 위험"

  • 입력 2003년 4월 16일 19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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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마다 드문드문 만나는 촌락에선 순례길 나그네들에게 물과 간단한 먹을거리를 줬다. 겨우 허기를 면할 정도지만 무슬림들은 수십 년 만의 성지 순례에 허기와 갈증도 잊은 듯 표정이 밝았다. 쉬지 않고 코란을 외웠다.

이라크 제2의 도시 바스라에 도착했다. 영국군이 개전 사흘 만에 시가지 대부분을 장악하고도 전투가 끊이지 않았던 곳이다. 이제 바스라는 평온해 보였다. 노천시장도 북적거렸고 시민들의 모습에선 긴장한 빛을 찾을 수 없었다. 시 외곽에 캠프를 세우고 경계태세를 갖추고 있는 영국군 병사들도 나른한 표정이었다.

시내 곳곳에는 한국산 중고차들이 눈에 띈다. 뒤쪽 유리창에 ‘○○교회’ ‘어린이 보호차량’이라는 한글 간판들이 그대로 붙은 채 수입된 차들이다. ‘한국에서 물 건너온 차’라는 뜻이어서 오히려 한글 표지를 선호한다고 한다. ‘미국인의 조상이 동굴생활을 할 때 세계 최초의 법체계를 완성했다’는 세계 4대 문명 발상지의 자취를 찾기란 힘들다.

성지 카르빌라를 지나 힐라를 향하자 성지 순례의 행렬은 끝나고 더 많은 시체들과 파괴된 탱크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라크전쟁의 최대 고비는 개전 1주일 뒤 미 보병3사단과 이라크 최정예 마디나 기갑사단이 격전을 치렀던 카르발라-힐라 공방전. 보급에 차질이 생긴 미군이 머뭇거리는 사이 이라크군의 완강한 저항까지 겹쳐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의 전쟁전략에 대한 논란을 불렀던 전선이다.

비교적 순탄하게 북상했던 취재진도 바그다드 남쪽 100㎞ 지점인 힐라에서 주행 중 뜻밖에 사고를 당했다. 왼쪽 뒷바퀴가 갑자기 튕겨나갔다. 시속 100㎞만 넘었어도 차는 뒤집혔을 것이다. 실제로 전날 요르단에서 바그다드로 향하던 아르헨티나 기자 2명이 타이어가 터지면서 차가 전복돼 사망했다. 이중 베로니카 카브레라(28)는 종군 여기자 중 첫 사망자로 기록됐다.

재키로 기울어진 차를 세우기엔 차체가 너무 컸다. 해는 이미 기울고 있었다. 여기서 밤을 새우다가는 어떤 일이 닥칠지 모른다. 그때 ‘구세주’가 나타났다. 길에서 당황하고 있는 취재진에게 한 아랍인이 ‘바람처럼’ 나타났다. 그는 어디서 가져왔는지 허름한 수리장비를 꺼내 능숙한 솜씨로 차를 바로 세웠다. 빠진 바퀴를 볼트와 너트로 다시 고정하는 데 걸린 시간은 단 10분.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반가운 표정을 짓는다. 혹시나 하고 그의 차 후미를 봤더니 한국산 봉고 상표가 붙어 있었다.

어둑어둑해진 바그다드 남쪽 외곽으로 들어서면서 분위기는 급변하기 시작했다. 길가에 널브러진 이라크 군용차량도 거의 100m마다 눈에 띄고 이라크 사람들의 눈빛도 차가워졌다. 바그다드국제공항(구 사담국제공항) 옆 사거리에 세워진 대형 사담 후세인 대통령의 사진은 이미 갈가리 찢겼지만 사람들의 행동거지엔 전장의 불안감이 그대로 묻어난다.

바그다드 중심을 흐르는 티그리스강 동안(東岸)에 있는 파라다이스 셰러턴 안달루스 등 호텔 세 곳은 각국 기자들로 초만원. 호텔 밖은 미군들이 안전을 책임지지 않는다. 호텔 입구에는 ‘오해 살 만한 행동을 일절 하지 말라’는 미 1해병사령부의 포고문이 붙어 있다.

오후 9시 넘어 도착한 취재진은 몇 번의 문전박대를 당한 끝에 방은 고사하고 셰러턴 호텔의 로비 한쪽을 빌리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로비 구석 소파에 쭈그려 앉으니 졸음이 무서운 기세로 밀려왔다. 그 사이 포성과 총성이 겹쳐 들린다. 전쟁은 끝났지만 전투는 끝나지 않았다.

바그다드=박래정특파원 ecopark@donga.com

김성규특파원 kimsk@donga.com

▼본보 특파원 어떻게 들어갔나▼

미군 부대배속(embed) 기자가 아닌 일반기자(unilateral journalist)들이 쿠웨이트 국경을 넘어 이라크에 들어가는 것은 쉽지 않다. 전투가 아직 끝나지 않은 길을 미군의 호위없이 통과해야 한다.

취재진은 자유롭고 독립적인 취재를 위해 이라크 민병대의 적의(敵意)와 미군의 오인사격, 그리고 폭도로 변할 수 있는 이라크인들의 약탈 가능성을 모두 감수키로 했다.

첫 난관은 국경 압달리 검문소였다. 미군들은 쿠웨이트 국방부가 발급한 월경허가서를 깡그리 무시하면서 쿠웨이트시에 있는 미군 호송장교를 데려오라고 했다. 1시간을 기다려 아랍 현지안내인이 근처 부대에서 쿠웨이트 장교 한 명을 데려와 가까스로 국경을 넘을 수 있었다. 우리가 ‘봇물’을 트자 비슷한 처지로 검문에 막혀 있던 인도 일본 독일 취재진도 뒤따라 국경을 넘었다.

어물거리는 사이 시간은 벌써 오전 6시30분. 일몰 전까지 한걸음에 바그다드에 도착해야 하는 취재진으로서는 황금 같은 시간을 허비했다. 어두워진 뒤에 바그다드로 진입하다가는 미군의 총탄세례를 받을 위험이 있다.

출발전 4륜구동 지프에 예비용 기름통과 방탄조끼, 방독면, 위성전화, 생수, 식료품, 플래시, 침낭, 양초, 물휴지 등을 실었다. 초대받지 않은 바그다드에서 무슨 일이 기다리고 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취재 차량에 큼지막하게 ‘PRESS(언론)’라고 써붙여 봤지만 이게 안전판이 되지는 못한다. 오히려 비무장 차량이라는 것을 알려줘 이라크 약탈자들의 표적이 될 수도 있다.

길에서 밤을 보내지 않기 위해 미군 부대에 들러 차 안에서 자고 가는 경우도 있지만 취재진은 직행했다. 다행히 차바퀴가 빠지는 ‘사소한’ 사고 외에는 무사히 바그다드에 도착했다.

하지만 바그다드가 안전지대는 아니다. 어느 기자가 총에 맞았다느니, 약탈당했다느니 하는 흉흉한 소식뿐이다. 음식을 구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문을 연 식당이 있다 해도 거기까지 찾아가는 것조차 목숨을 거는 일이다. 빵과 과자, 통조림으로 때울 수밖에.

셰러턴호텔의 로비 한쪽을 빌렸다. 차 안에서 숙식을 안 해도 된다는 것만으로도 축복이다. 지금부터 바그다드 취재는 시작된다. 그러나 취재를 마친다고 해서 위험이 끝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같은 길을 되돌아가야 한다.

바그다드=박래정특파원 ecopark@donga.com

김성규특파원 kim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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