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戰爭]후세인의 비밀병기 '部族 게릴라'

  • 입력 2003년 3월 28일 18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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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끗희끗한 콧수염에 검게 그을린 얼굴의 이라크 촌로(村老) 알리 오베이디. 최근 바그다드 남쪽에서 80㎞ 떨어진 카르발라에서 미군 아파치 헬리콥터가 격추됐을 때 카메라맨들 앞에서 구식 장총을 치켜들며 자기 전과(戰果)라고 자랑스레 밝혔던 이다.

이라크 현지 사정에 정통한 이들은 오베이디가 이라크 정규군이나 지역 보안대인 페다인 민병대 출신이 아니라 카르발라 지역 족장들의 지시에 따라 전투에 나선 ‘부족게릴라’의 일원이라고 보고 있다.

이들은 ‘자살 폭탄’, 민간인 여성전투원, 모래폭풍과 더불어 미영 지상군의 진격을 가로막는 강력한 무기다. 이라크 소식에 정통한 전문가들은 이라크 내 121개 종족들이 지역별로 형성하고 있는 수천개의 ‘부족시스템’이야말로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을 돕는 ‘비밀 병기’라고 전했다.

현재 이들 부족들이 민간인 복장의 게릴라가 돼 미영 지상군을 기습적으로 공격하고 있다. 후세인 정권은 이들의 전과에 만족하고 있다.

후세인 대통령은 24, 25일 발표한 항전 독려문을 통해 “부족들은 추가 지시가 없어도 자율적으로 침략자들을 공격하라”고 지시했다. “적들과 정면 승부를 하지 말고 적들의 머리와 꼬리를 쳐라. 적들이 공격하면 피하고, 쉬면 기습하라”는 구체적인 전술도 시달했다.

이들 부족들을 이끄는 족장들은 반경 수십㎞에 이르는 봉토(封土)를 가지고 있으며 경작권을 지역민들에게 나눠주는 대가로 충성과 노역을 받고 있다. 주로 농촌에서 온존해온 이 같은 전근대적인 지역 경제 시스템은 1958년 이라크의 하심 왕가가 붕괴될 때까지 계속됐다. 그러나 58년 후세인 대통령이 소속돼 있던 사회주의 바트당이 집권, 족장들로부터 봉토를 빼앗으면서 부족시스템은 급격히 약화됐다.

그러나 후세인 대통령이 91년 걸프전에서 패배한 후 통치권이 곳곳에서 붕괴되자 부족시스템을 부활시켰다. 중앙집권적인 권력을 지방분권화하는 대신 자신은 ‘족장들의 지지를 받는 대족장’이 되는 방식을 택한 것.

그는 92년 바그다드 인근의 대통령궁 가운데 한 곳으로 족장들을 초청한 다음 과거 바트당의 일방적인 경제 개혁에 대해 사과했다. 이후 그는 족장들에게 과거의 봉토뿐 아니라 국가의 고위 관리에 준하는 지위를 주고 경찰력, 재판권, 징세권까지 부여했다. 족장은 자기 부족민 중 일부의 병역을 면제할 권한을 갖고 있으며 이들에게 차량, 통신수단, 무기 등을 주고 부족장 직할부대를 만들 수도 있다.

이 같은 부족장 직할부대가 후세인 정권의 신임을 받은 것은 걸프전 이후 이라크 남부 시아파 이슬람 교도들의 대규모 폭동을 이들이 성공적으로 진압하면서부터다.

이런 역사적인 배경 때문에 미영군이 후세인 정권을 와해시키는데 성공하고 민주주의를 이라크에 도입한다 하더라도 각 지방에 뿌리 깊게 박혀 있는 가부장적 부족시스템까지 근대화시킨다는 것은 험난한 작업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권기태특파원 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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