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색 가로등의 '비밀' …흰색 수은등 아래 나비 떼죽음

  • 입력 2003년 1월 30일 17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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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인들은 1964년 인스브루크 동계올림픽 때 환호했다. 스키 강국인 오스트리아는 활강과 회전 종목을 휩쓸었다. 하지만 나비들에게는 죽음의 축제였다.

인스브루크시는 도심을 가로지르는 인(Inn)강에 다리를 놓았는데 다리 위의 휘황찬란한 수은 가로등들이 나비들을 유혹한 것. 밤새 하얀 불빛에 취해 춤추던 나비들은 먹이도 찾지 못하고 알도 낳지 못한 채 사라져 갔다.

나비를 좋아하던 14세의 소년 게르하르트 타르만은 수천 마리의 나비가 다리 난간에 떼지어 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 뒤 3년도 안 돼 거의 모든 나비가 자취를 감췄다.

월 스트리트 저널은 29일 이 같은 나비의 소멸을 막으려는 한 나비학자의 집념을 1면 기사로 소개했다.

그 후 38년간 인스브루크에는 더 많은 스키장과 주유소가 들어서 밤새 불을 밝혔다. 600종이 넘던 나비는 8종밖에 남지 않았다. 달라진 것은 소년 타르만이 생물학을 전공하고 세계 최대의 나비 박물관인 페르디난데움 박물관의 연구관이 됐다는 점.

과학자들 사이에서는 노란빛을 비추는 나트륨등이 나비에 안전하다고 알려져 있다. 나비를 유혹하는 자외선이 나오지 않기 때문. 문제는 나트륨등이 세 배나 비싸다는 것.

타르만씨는 같은 고민을 하던 오랜 친구이자 환경부 관리인 지그베르트 리카보나와 손을 잡았다. 2000년 초 인구 2135명의 소도시 비르겐의 한 초등학교에서 나비 교실을 열었다. 밤에 학생들과 함께 고성(古城)을 찾아가 수은등을 켰다. 수많은 나비와 나방들이 모여들었다. 그러나 나트륨등을 켰을 때는 불과 몇 마리밖에 모이지 않았다.

이 일을 계기로 비르겐시는 마을의 230개 가로등을 나트륨등으로 교체하겠다고 발표했고 이어 298개의 마을들이 비르겐시의 뒤를 따랐다.

독일 덴마크 미국에서도 타르만씨에게 조언을 구해 왔다. 포드자동차는 지난해 9월 자사가 세운 미시간주의 쇼핑몰과 호텔에 1521개의 나트륨등을 달았다. 세계의 밤이 점점 노란색으로 바뀌고 있다. 서울시도 가로등을 나트륨등으로 교체하고 있는 중이다.

홍은택기자 eunta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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