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경제위기]미국식 경영 추구하다 멍들어

  • 입력 2002년 8월 1일 18시 03분


스위스 시계만큼이나 건실하다는 평가를 받아온 스위스 경제가 흔들리고 있다.

인구 700만명에 불과한 스위스는 유럽에서 가장 높은 1인당 국민소득(3만1000달러)과 가장 낮은 실업률(2.1%)을 유지해온 유럽 최고의 경제부국. 높은 생산성과 낮은 기업세 덕분에 세계 100위 내에 포함된 다국적 기업이 10여개에 이를 정도로 ‘기업하기 좋은 나라’로 꼽혀왔다.

그러나 지난해 중반 이후 내로라 하는 다국적 기업들이 속속 경영난에 부닥치면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스위스가 유지해온 ‘유럽의 경제 모범생’ 이미지가 무너지고 있다고 경제전문지 비즈니스위크가 최근호(5일자)에서 보도했다. 이 잡지는 스위스의 경제위기는 90년대 이후 다국적 기업들이 적극 도입했던 미국식 경영모델이 한계에 봉착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대기업의 경영 부실〓경영난의 최대 요인은 무리한 기업 인수합병(M&A)으로 인한 부채 증가. 스위스 최대 항공사인 스위스 항공은 벨기에의 사베나 벨기에 항공 등 군소 항공사 10여개를 무리하게 인수하다 100억달러의 부채를 이기지 못해 지난해 10월 파산했다.

스위스 2위의 금융그룹인 크레디스위스는 98년 미국 증권사인 퍼스트 보스턴을 인수한 데 이어 2000년 미국 투자은행인 DL&J까지 사들였으나 수익성 악화에 대한 우려 때문에 주가가 절반 이상 떨어졌다.

최고경영자(CEO)의 독단 경영과 도덕 불감증도 심각하다. 크레디스위스의 CEO 루카스 뮐레만은 이사회의 승인도 없이 스위스 항공 금융지원에 나섰다가 이달 초 CEO직에서 물러났다. 스위스의 대형 보험사 취리히 파이낸셜그룹의 회장 겸 CEO 롤프 휘피는 경영부실의 책임을 지고 사임하라는 이사회의 압력을 받자 CEO직에서만 물러나고 회장 자리는 고수하고 있다.

세계 최대 공구제조업체로 스위스-스웨덴 합작회사인 ABB의 CEO 퍼시 바네빅은 지난해 7억달러의 적자를 낸 책임을 지고 2월 사임하면서 1억3000만달러의 퇴직금을 챙겼다. 바네빅씨는 또 지난해 ABB 회계장부에서 4000만달러의 손실을 감추도록 방조한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식 경영의 부작용〓스위스 내 다국적 기업들의 경영난은 아이러니컬하게도 90년대 미국식 경영모델을 가장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결과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미국식 모델 도입이 내부 반발에 부닥쳤던 독일 프랑스와 달리 스위스의 다국적 기업들은 공격적인 M&A에 나서고 CEO의 경영권을 확대하면서 경영난의 불씨를 키웠다는 것.

루스 메츨러 아놀드 스위스 법무장관은 “대기업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가 위험할 정도로 떨어졌다”면서 “더 이상 신뢰가 하락한다면 경제 전반의 위기로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최근 스위스 경제계는 CEO와 사외이사의 연봉 공개 등을 골자로 하는 기업개혁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정미경기자 mickey@donga.com

경영난을 겪고 있는 주요 스위스 기업
크레디스위스ABB스위스에어
분야금융공구 제조항공
CEO루카스 뮐레만퍼시 바네빅마리오 코티
부실경영 내용 ·미투자은행 무리하게 인수·스위스에어 불법 대출·상장 불법 중개·회계부정·7억달러 적자 ·CEO 과다 보수 지급·군소 항공업체 무리하게 인수·100억달러 부채·파산보호 신청
경과CEO 사임CEO 사임스위스 정부 26억달러 긴급지원

스위스 경제의 약점과 강점
약점강점
·기업들의 무리한 M&A ·무력한 이사회·성장률 및 생산성 정체·금융산업 위기·법인세 유럽 내 최저 수준 ·정치적 안정·유연한 노동시장 ·탄탄한 사회간접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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