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미군, ‘재판권’ 현명한 판단을

  • 입력 2002년 7월 11일 18시 20분


법무부가 미군 장갑차에 의한 여중생 사망 사건과 관련해 주한미군사령부에 재판권 포기를 요청한 것은 부여된 권리행사라는 점에서 바람직하다.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22조 3항은 미군이 공무 중 저지른 범죄에 대해 한국정부가 재판권 포기를 요청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협정은 미군 측이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협정은 재판권 포기 요청을 받은 국가에 대해 “호의적 고려를 해야 한다”는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법적 기속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미군 측이 한미 우호관계를 고려하고 사안의 심각성을 인식한다면 이 조항을 무게 있게 여기기를 바란다.

리언 라포트 주한미군사령관에 이어 토머스 허버드 미대사가 미군 측 책임을 인정하고 사과한 것은 평가할 만하다. 그 정신 아래 재판권 포기여부를 전향적으로 검토한다면 사태해결에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다. 미군 측에서 “공무 중 발생한 사건에 대해 재판권을 포기하는 선례를 만들 수 없다”는 비공식 반응이 나오고 있으나 우리는 그것이 최종결론이 아니기를 바란다. 미군 측에 주어진 42일의 기간 내에 현명한 판단이 있기를 기대한다.

꽃다운 나이의 여중생 2명이 숨진 사건에 한국민의 관심이 깊다. 미군 측은 53개국에 미군이 주둔하고 있으나 재판권을 포기한 사례가 없다는 점을 내세우는 모양이지만 한국이 재판권 포기 카드를 꺼낸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우리가 재판권을 요청한 것은 사건의 진상을 밝히고 과실에 대한 합당한 처벌을 내리기 위한 노력임을 미군 측은 이해해야 한다.

미군 측이 늦게나마 한국 검찰의 진상조사에 협력키로 한 것은 긍정적이다. 유족과 주민들도 양국의 우호관계를 고려해 정부와 미군 측의 협상 추이를 냉정하게 지켜보는 것이 옳다. 정부 관계자들도 재판권 포기 요청을 역사에 기록한다는 차원을 넘어 원만한 사태수습이라는 큰 목표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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