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3國순방 회견 발언내용과 의미

  • 입력 2002년 2월 16일 18시 12분


평화봉사단원들을 상대로 연설하는 부시 대통령
평화봉사단원들을 상대로 연설하는 부시 대통령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16일(한국시간) 동북아 순방국 언론과의 회견에서도 북한에 대한 뿌리깊은 불신감을 드러냈다. 북한은 주민들이 굶주리는데도 군사력 증강을 계속하는 억압적 체제로 결코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도 ‘한반도의 통일’을 원하므로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지지한다고 밝혔지만 대북정책의 각론에서는 한국 정부와의 견해차가 있음을 숨기지 않았다. 이는 향후 북-미대화가 재개된다 해도 상당한 진통이 불가피하고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대북정책 조율이 쉽지 않을 것임을 시사한다.

부시 대통령이 언급한 △재래식 병력의 후방 이동의 의미는 무엇이며 북-미대화의 의제가 될 수 있을 것인지 △‘최악의 상황’이란 무슨 의미이며 △이례적으로 한반도 통일을 언급한 배경은 무엇이고 △북한의 과도한 군사비 지출에 대한 우려 표명은 또 어떤 맥락에서 나온 것인지를 차례대로 짚어본다.

부시의 한반도 관련 발언 (16일 아시아 3국 기자회견)
강경 발언
△북한 사회는 투명하지 않으며 통일에 대해 적극적인 자세를 갖고 있지 않다
△북한이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길 원한다면 대량살상무기의 확산을 중지해야 한다
△미군이 있다는 이유로 북한은 서울에 총구를 겨누고 있다
△북한이 대량살상무기의 확산을 그만두지 않는 한 최악의 것을 상정할 수밖에 없다
온건 발언
△북한과 대화하려는 김대중 대통령의 노력을 높이 평가한다
△한반도 통일이 이뤄지길 희망하고 김 대통령의 포용정책을 지지해온 것도 그 때문이다
△북한과 대화를 하겠다는 제안은 지금도 유효하다
△북한이 국제사회의 일원이 될 경우 무역과 상업, 교류 등 모든 혜택을 줄 수 있다

▼재래식무기 후방배치 필요성 강조▼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북한군의 재래식무기 후방배치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한 것은 앞으로 북-미간 대화에서도 이를 주요 의제로 삼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보인다. 이는 핵과 미사일은 북-미간에, 재래식무기는 남북간에 풀어간다는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의 ‘역할분담론’을 더 이상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미인 셈이다.

방사포를 비롯한 북한의 전방배치 전력이 한국군과 주한미군에 큰 위협이 되고 있는 것은 사실. 북한군은 계속되는 경제난에도 불구하고 240㎜ 방사포와 170㎜ 자주포 등 장사정포를 전방지역에 증강 배치하고 평양∼원산 이남에 10여개 군단과 60여개 사단 및 여단을 전진 배치시켜 언제라도 남침할 수 있는 전투태세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으로 북-미대화에서 이 문제가 논의되더라도 합의점을 찾기는 쉽지 않을 전망. 북한은 재래식무기를 뒤로 물리라는 요구에 대해 “무장해제를 하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반발하면서 오히려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해 왔다.

뿐만 아니라 남한도 상응하는 조치를 취해야 하는데 한국군의 전방배치 전력을 후방으로 옮기는 것은 쉽지 않은 문제이다. 정부 관계자는 “이 문제는 서로의 안전이 보장되는 선에서 시간을 두고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성동기기자 esprit@donga.com

▼'최악의 상황' 언급▼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회견에서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MD) 확산 포기를 거듭 촉구하면서 언급한 ‘최악의 상황(The Worst)’이란 북한에 대한 군사적 제재 조치 가능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미국은 WMD 확산 방지를 위해 국제조약이나 협약, 군축회의 등 외교적 수단을 통한 비(非)확산(Non-Proliferation)정책과 함께 군사적 정밀타격, 미사일방어(MD)체제 구축 등 공세적 수단까지 포함한 대(對)확산(Counter-proliferation)정책을 추구해 왔다.

정밀타격은 WMD 보유국의 사용 의지를 꺾기 위해 WMD 생산시설이나 저장소, 미사일 발사대 등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다만 현 상황에서 부시 대통령이 ‘최악의 상황’을 언급한 것은 어디까지나 ‘경고’의 성격이 강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분석이다. WMD 포기에 따른 보상 등 ‘당근’과 함께 군사공격도 배제하지 않겠다는 ‘채찍’으로 북한을 협상테이블로 끌어내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부시 대통령의 언급은 또 남북간에 △군사직통전화 개설 △군사훈련 통보 △참관단 교환 등 군사적 신뢰구축조치(CBM)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내라는 촉구성 메시지도 담겨있다고 전문가들은 풀이했다.

이철희기자 klimt@donga.com

▼"한반도 통일 희망" 피력▼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한반도 통일을 희망한다”고 말한 것은 원론적인 얘기임에도 불구하고 역대 미국 대통령이 한반도 통일에 관한 희망을 언급한 유례가 거의 없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부시 대통령이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통일관(view of reunification)에 동의한다”고 한 것은 대북포용정책을 공개적으로 지지한 것이라는 게 정부 관계자들의 평가. 그러나 그가 한반도 통일을 언급하면서 자신이 ‘자유의 신봉자’라는 점을 강조한 대목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있다.

우리 정부가 햇볕정책의 성공만을 위해 북한에 대해 달러와 전력을 비롯한 전략물자를 제공할 경우 호전적인 군부를 중심으로 한 북한체제의 내구력을 강화시켜 평화통일에 역행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즉 북한에 대한 부시 대통령의 기본적인 인식이 ‘주민을 굶주림 속에 빠뜨리면서 대량살상무기를 수출하는 나라’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북한에 대한 양보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의사를 내비친 것이라는 얘기다.

통일연구원 허문영(許文寧) 연구위원은 “부시 대통령은 ‘악의 축’ 발언이 전쟁지향적이 아니라 자유수호를 목표로 하고 있음을 강조하기 위해 통일문제를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영식기자 spear@donga.com

▼北 군사비 과다지출 우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북한의 군사비 전용 문제에 우려를 표시함에 따라 향후 이 문제는 북-미대화에서도 주요 의제로 부각될 가능성이 높다. 북한의 과도한 군사비 지출은 한반도지역의 군사적 긴장완화뿐만 아니라 북한 주민들의 기아 해소와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부시 대통령이 “한반도지역의 군사적 긴장을 해소하면 인도적 목적에 사용할 돈을 군사비로 전용할 필요가 없어진다”고 말한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다.

북한의 2000년도 국방비 지출액은 50억달러로 168억달러에 이르는 국민총소득(GNI)의 29.8%를 차지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이 지난해 3월 “북한에 대해 의구심(skepticism)을 갖고 있다”고 밝힌 것도 이처럼 주민들의 복지를 무시한 과도한 국방비 지출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인식을 반영한 것.

전문가들은 “부시 대통령의 언급은 궁극적으로 북한체제의 변화를 유도해 정상적인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만들겠다는 뜻을 재확인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의 구상은 군부중심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대량살상무기(WMD) 수출과 과도한 군사비를 지출하는 북한체제의 근본적인 변혁을 요구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북한 측이 호응할 가능성은 적다.

김영식기자 spe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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