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론, 후폭풍 5]거액 자문료 뿌려 ‘침묵’ 을 샀다

  • 입력 2002년 2월 6일 17시 57분


“9·11테러가 세계무역센터를 무너뜨렸다고 하면 엔론은 시장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렸다. 건물은 다시 지을 수 있지만 신뢰는 쉽게 되찾을 수 없다.”

엔론 사태가 미국 경제에 미친 영향을 이렇게 극명하게 표현한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폴 크루그먼(프린스턴대 경제학과 교수)은 자신이 엔론으로부터 5만달러를 받은 어두운 ‘과거’가 있다.

▼연재기사목록▼
- ① 의심받는 대기업 회계
- ② 종업원 연금제도 흔들
- ③ 월가의 교묘한 금융거래
- ④ 역할 못한 사외이사제
- ⑤ 지식인들 왜 입닫았나

미 경제에 엄청난 충격을 던진 엔론 사태는 경영인, 회계사, 정치인, 정부의 책임만은 아니다. 사회적 안전장치의 마지막 보루인 지식인도 책임이 크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뉴욕타임스의 러스 루이스 사장은 지난달 30일 엔론 사태가 악화되는 동안 경보음을 울리지 못한 언론의 책임을 통감하는 글을 발표했다.

그러나 언론인에 쏠리는 의혹은 이보다 더 구체적이다.

크루그먼 교수 외에도 시사주간지 위클리 스탠더드 편집장인 빌 크리스톨은 10만달러, CNBC의 평론가 로렌스 쿠들로는 5만달러를 자문료 명목으로 받았다. 월스트리트저널 칼럼니스트 페기 누넌은 케네스 레이 전 엔론 회장의 원고를 고쳐주는 대가로 5만달러를 받았다.

저명한 언론인인 이들은 돈을 대가로 엔론을 위해 한 일이 없다고 해명했다. 워싱턴포스트의 미디어 전문기자인 하워드 커츠는 지난달 30일 “그렇다면 그 돈은 침묵의 대가가 아니냐”고 비판했다.

엔론은 언론인과 교수에 대해 자문료로만 100만달러를 지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엔론 문제에 침묵하기는 학계도 마찬가지. 미 경영대학원에서는 엔론이 신경영 모델의 혁신기업이라고 가르쳐왔다. 그러나 현란한 회계수법으로 천문학적인 부채를 감춰온 이면을 들여다본 학자는 없었다.

엔론이 대학에 막대한 기부금을 제공해온 것도 ‘침묵’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라이스대와 네브래스카대 휴스턴대는 기부금에 대한 보답으로 엔론과 레이 전 회장의 이름을 딴 ‘엔론 교수’나 ‘케네스 L 레이 교수’ 직함을 앞다퉈 신설했다. 이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교수들에게 학자로서의 성공과 동일시됐다.

엔론이 몰락한 지금은 이 직함을 없애야 하는 문제로 고민에 빠져 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이기적인 이익추구의 총합이 가장 능률적이고 최선의 결과를 가져오며 정부가 할 일은 끼어들지 않는 것이라며 시장에 대한 맹신을 가르쳐온”(비즈니스위크) 지식인들에 대한 따가운 눈총부터 어떻게 불식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할 때다.

홍은택기자 eunta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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