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론후폭풍]<3>월가의 교묘한 금융거래

  • 입력 2002년 2월 3일 18시 09분


엔론은 월가의 금융회사들에는 거대한 사냥감이었다. 급팽창하는 엔론에 앞다퉈 자금을 대주면서 이자와 수수료, 자문료로 2억달러(약 2600억원)를 챙겼다. 엔론 파국으로 금융의 제1원칙인 투자위험도에 대한 고려가 전혀 무시됐다는 사실이 입증됐다.

그러나 보다 더 위험한 게임이 월가와 엔론 사이에 진행됐음이 드러나고 있다.

▼연재기사목록▼
- ① 의심받는 대기업 회계
- ② 종업원 연금제도 흔들
- ③ 월가의 교묘한 금융거래
- ④ 역할 못한 사외이사제
- ⑤ 지식인들 왜 입닫았나

엔론에 26억달러(약 3조3800억원)의 채권이 있다고 밝힌 JP모건체이스. 1862년 이 회사를 설립한 JP 모건은 ‘신뢰받는 품성이 금융인의 성공요인’이라고 꼽았다. 하지만 140년이 지난 지금 이 회사는 최대의 신뢰 위기에 봉착해 있다.

모건과 엔론의 위험한 거래는 모건이 세운 에너지거래 기업 매호니어를 통해 이뤄졌다. 수법은 다음과 같다.

먼저 엔론은 매호니어에 1억달러어치의 천연가스 또는 원유를 나중에 인도키로 판매계약(선물계약)을 맺은 즉시 1억달러를 받는다. 이 돈은 다른 쪽에서 입은 손실을 상쇄하는 데 사용된다. 그런 뒤 엔론은 1000만달러 또는 2000만달러어치로 분할해 현물을 인도할 때마다 장부에 손실로 기입한다. 그러나 적자폭이 커질 때에는 기입하지 않고 미루다가 도저히 미룰 수 없을 때에는 다시 매호니어와 선물계약을 해 일시에 많은 현금을 확보한다. 이 과정을 반복할수록 장부외 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매호니어는 이를 뻔히 알지만 엔론으로부터 시세보다 7∼8% 싼 가격에 현물을 제공받고 시세대로 엔론에 되팔기 때문에 밑지는 장사가 아니다. 7∼8% 마진은 대출이자보다 높다. 엔론과 20억달러어치의 거래를 했기 때문에 1% 차이만 나도 2000만달러의 추가이익을 얻는다. 여기에 수수료까지 챙겼다. 사실상 대출이다.

하지만 갈수록 엔론이 요구하는 거래액이 커졌다. 99년 여름에는 6억5000만달러어치의 거래를 요구했다. 엔론이 망해버리면 원금을 떼일 수 있다는 불안을 떨쳐버릴 수 없다. 여기서 보험회사들이 등장한다. 씨티그룹 등은 엔론으로부터 보험료를 챙기고 엔론이 매호니어에 약정된 현물을 인도할 수 있다는 보증서(surety bonds)를 발행했다. JP모건으로서는 완벽한 계약인 것처럼 보였다. 어떤 경우에든 원금을 회수할 수 있기 때문.

그러나 엔론의 법정관리 신청 이후 보험회사들이 매호니어와 엔론의 계약을 ‘사기’로 규정, 원금 지불을 거절하면서 상호 맞고소의 이전투구에 들어갔다. 그리고 서로 치열하게 법정 공방을 벌이면서 월가의 교묘한 뒷거래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홍은택기자 eunta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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